영웅격정사/ 한정주 지음/ 포럼 펴냄
고대 중국이나 로마는 긴 역사만큼이나 숱한 인물(혹은 영웅)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그 역사 속에서 생성·소멸했던 인물들을 담은 '사기'나 '플루타르크 영웅전'(원제: Bioi Paralleloi, 비교열전)은 고전으로 불리며 아직도 널리 읽히는 대표적인 책들이다.
사학을 전공한 '영웅격정사'의 저자는 두 고전 속에 등장하는 부지기수의 인물들을 비교하고 공통점을 찾아내는 얼핏 무모해 보이는 시도를 했다. 그들의 삶을 '사건과 스캔들'로 재구성한 뒤 재해석했다. 수천 년 전에 사라진 인물이 아닌 21세기의 시간을 함께 호흡하는 '다시 살아난 사람들'로 만들었다. 이는 고전을 저자 나름대로 새롭고 창조적으로 읽고 해석하는 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를 위해 저자는 '창조'와 '혁신'이라는 기준을 두고 12명을 골라 비교하고 있다. 이 12명의 인물들은 1장부터 '개혁''혁명''병법''용병술''이상국가''천하통일' 등의 핵심어를 기준으로 새로운 해석의 대상으로 떠오른다.
1장에서는 국가위기 상황을 개혁으로 돌파하려 했던 상앙과 솔론의 이야기가 나온다. 두 사람은 진나라와 아테네를 혁신시켜 위기에서 탈출시켰다. 철저히 법치에 입각해 과감하고 준엄한 개혁을 실천했다. 고대 동·서양의 가장 대표적인 '입법 개혁 모델과 그 실천 과정'을 알아보고, 두 사람의 입법 개혁이 실제로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살펴본다. 저자가 보기엔 맹자나 그라쿠스 형제는 '모든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라는 당시에 아주 혁명적인 생각에 평생을 바친 사람들이다. 이미 수천년 전 '혁명을 꿈꾼 인간들'이었다.(2장)
'침략과 정복의 시대'에서 병법의 중요성은 그 어떤 때보다 대단했다. 전쟁에서의 승패가 곧 나라의 운명을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오자병법'을 남긴 오기나 한니발이 세계 최고로 꼽았다는 피로스의 창조적인 병법 얘기도 3장에서 다뤄진다. 고대 전쟁사를 새롭게 썼다는 두 영웅의 이야기다. 저자가 4장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은 한신과 스키피오다. '발상의 전환'을 통한 최고의 용병술로 왕조 건립과 제국 발전에 기여했던 인물들이다. 그러나 둘 다 견제세력에 의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고대 동서양 문화의 가장 찬란한 시기를 대표하고 있는 주나라와 아테네의 국가체제를 완성한 것으로 알려진 주공과 페리클레스는 이상국가를 꿈꾼 위대한 정치가들이었다. 5장에서는 주공이 꿈꾼 '천년 왕국'과 페리클레스의 '이상국가'가 일맥상통한다고 보는 저자의 시각이 제시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새롭게 바라본 인물은 진시황과 카이사르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제국을 세운 진시황이나 로마사 최고의 천재라 평가받는 카이사르는 폭군이나 독재자라는 혹평을 동시에 받고 있다. 저자는 이들이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제국 설계도를 갖고 당시 중국과 로마가 안고 있던 시대적 위기를 개척해 나간 인물로 보고 있다.
저자는 사마천과 플루타르크도 창조와 혁신의 모범을 보여준 인물들이라고 평가했다. 역사가 사마천은 수백 년간 당연시됐던 역사서 형식을 파괴하고 편년체로 사기를 서술했다. '역사를 서술하는 방법에 있어서의 혁명'을 시도했던 것이다. 플루타르크의 작품도 서양의 인물 전기, 특히 '인물 비교 열전'의 효시가 됐다. 자신만의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해 낸 것이다.
너무나 달랐던 두 사람의 개인적 상황을 살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되겠다. 사마천은 궁형(생식기를 거세당하는 형벌)을 당하면서까지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기 위해 책을 완성해야 했다. 반면 플루타르크는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행복했던 시대(로마의 오현제 시대)'를 살면서 로마와 그리스의 지식계층으로부터 최고의 존경을 받으며 책을 집필했다. 이러한 개인사적 '행·불행'이 저술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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