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치와 '기무치'의 전쟁

영조(英祖) 대왕은 조선왕조 임금 중 최장수(82세) 기록을 세운 임금답게 식성이 매우 좋았다고 한다.1768년 '영조실록'에는 왕조실록 중 매우 드물게도 수라상의 음식 이야기와 함께 식성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그 중 눈에 띄는 메뉴는 고추장이다.

"송이, 날 전복, 어린 꿩고기, 고초장(고추장) 이 네 가지 맛이 있으면 밥을 잘 먹으니 내 입맛이 완전히 늙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당시 74세 된 노 임금께서 입맛이 건재하심을 은연 중 과시하는 속에 백성들도 흔하게 먹는 고추장을 진미(珍味)의 반열에 올려놓은 어록이다.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615년경으로 임진왜란 이후 우리나라로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조선조 중기 이전에는 시뻘건 고추 양념 김치는 먹지 못했고 맨소금으로 간을 맞춘 '백김치'나 '동치미' 또는 간장으로 버무린 '장김치' 같은 것을 먹었다. 시대로 따져 본다면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께서도 고추 양념 김치는 잡숴 보지 못한 셈이다.

특히 요즘의 배추는 서양 종자를 개량한 것으로 19세기 말에 우리나라로 들어왔다니까 겨우 100여 년 만에 외국서 들여온 고추와 서양 개량 배추로 세계적인 김치 종주국이 되고 최고의 브랜드로 키워 낸 자랑스런 민족인 셈이다.

그런데 그 세계적 브랜드인 한국김치가 기생충 논란에 휘말려 국제적 망신을 당하고 있다.

김치의 맛에 문제가 있어서라면 모르겠으되 이번 김치 망신 탓이 맛 탓이 아닌 사람 탓이라는 데서 국민의 심기를 건드린다.

한국산 김치의 통관을 중단시킨 일본의 경우 한국이 수출하는 김치 중 93%인 3만2천400t(900억 원 상당)을 수입하고 있는 최대 소비국인 만큼 통관 중지'전수 검사 등의 '김치 전쟁'수준의 대응은 그쪽 입장에선 당연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동안 일본 '기무치'로 한국 '김치'를 밀쳐내고 세계적 대표 브랜드를 차지하려고 혈안이 되다시피해 왔던 일본으로서는 한국의 '기생충 김치'는 절호의 타격거리가 될 수 있다.

벌써 일본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한국김치의 기생충 알 논란을 붙잡고 늘어지는 부정적 비판들이 쏟아지고 있다.

"김치 문제건 어떤 문제건 일단 중국하고 한국하고 계속 더 싸워라"는 한'중 김치 시비를 부추기는 글도 있고 "저희끼리 싸우는 동안이라도 일본 쪽 문제(독도 문제 등)에 신경 덜 쓰겠지"라고 비아냥대는 글도 뜬다. 그런 한국김치 깎아내리기는 즉흥적인 네티즌들의 단세포적 비판뿐 아니라 대학교수 등 지식층의 대담 내용조차 침소봉대식이긴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보자. 사회자가 "김치(한국산) 먹기가 겁납니다. 괜찮을까요?"하면 답변자 (간사이 모 대학 공중위생학과 교수)는 "아직 공식적으로 일본에 문제의 제품이 들어온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 여행 가서 선물로 사 오던가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실제 그걸 먹고 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일본산 김치는 안심하고 먹을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좀 과장되게 표현해서 김치와 기무치의 전쟁 토론에 가깝다.

그러나 일본 네티즌'지식층을 탓할 일도 못된다. 위생 관리 제대로 못한 우리(한국 기업) 탓이요, 난데없이 품질 검사 기준에도 없던 기생충 검사를 한다고 법석대다가 1천억 가까운 수출길 막고 세계적 브랜드 이미지에 치명타를 안긴 정부 당국의 미숙함 탓이 크다.

사려 깊은 정부라면 평소에 예상되는 모든 검사 기준들을 보완하고 그에 따른 사전 계도와 위생 감독을 철저히 하면서 브랜드 가치를 계속 높여가도록 지원 육성했어야 했다.

이왕 벌어진 전쟁, 김치 업체'정부 다같이 반성과 개선 노력으로 계속 기무치를 누르자.

배추 한 포기 깨끗이 키워 내는 것도 애국이 되는 글로벌시대다.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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