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은 당당한 권위를 가진 지식체계이자 사회변화의 원동력이다. 일찍이 온갖 미신과 전통적 사고에 물든 인간을 해방시켜 물질적 풍요로 이끈 것이 과학기술이었다. 특히 오늘날에는 생명공학과 정보통신 혁명이 급진전되면서 그 영향력의 범위와 세기가 더욱 커졌다. 그러다보니 과학기술 혁신을 역사 진보와 동일시하는 일부 인사들은 "이제 우리 인간이 마음먹으면 못할 게 없다"고 여기기에 이르렀다. 최근 공개된 각종 연구 성과는 이러한 믿음을 한층 강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논란거리도 적지 않은데, 무엇보다 대중의 요구와 과학기술의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흔히 전문가들은 대중의 과학기술 이해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으리라 쉽게 가정한다. 지식화 되지 못한 아마추어들로서는 아무리 설명해봐야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수두룩하므로, 차라리 효율적인 일처리를 위해 능력 갖춘 소수가 판단하고 결정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단정해 버린다. 이처럼 단단한 능력 차등론이 다수 대중의 뜻 제시를 가로막는 근거가 된다. 하지만 문제는 겉으로 드러난 지식의 차이, 이해력의 차이가 결코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개선 가능하다는 데 있다.
사실 지금까지 과학기술 영역은 시민 대중의 잠재력과 대면하거나 이를 반영하려는 시도가 드물었다. 서로 진지하게 묻고 답하는 절차 없이 거의 모든 게 이루어졌다. 따라서 생명공학, 유전공학, 정보통신 분야의 새로운 성과물을 향한 환호는 요란하되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한 비전 공유는 어려웠다. 심지어 중앙정부조차 과학기술의 자비로움을 내세울 뿐 대중 지식화에 무관심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과학기술 중심도시를 앞세워 온 대구시의 경우에도 곰곰이 따져보고 되짚어볼 바가 많다. 혹시 번듯한 연구시설 꾸미고 스타 과학자 한두 사람 모셔오는 것으로 도시의 모습이 밑바탕부터 달라지리라 기대하지 않는지, 몇 차례 거창한 이벤트로 시민의 동의가 형성되리라 확신하지 않는지!
그런데 요즘의 흐름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이들의 생각은 다소 다르다. 올바른 과학기술 중심도시는 다양한 과학정보를 쏟아내기에 바쁜 지역 대학과 도서관의 놀라운 정성, 머리를 맞대고 궁금증을 풀어가는 자생적 동호인 모임의 열정, 축적된 정보를 기꺼이 나누려는 과학상점 종사자들의 헌신, 그리고 앞선 감각을 가진 행정의 뒷받침 속에서 자라난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과학 장비와 인력 확보 못지않게 서둘러야 할 것은 지역 주민의 기초체력 키우기이다. 이러한 여건이 자리 잡은 다음에야 도시는 당연히 소망을 이룬다.
과학기술은 지나치게 형식에 매달리면 우리 곁을 떠나 저 멀리 허공을 거닐게 된다.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대구가 내건 과학기술 중심도시의 이상 역시 겉껍질이 아니라 알맹이를 만져보고 요모조모 따져볼 수 있을 때 발 디딘 곳에 강하게 뿌리내린다.
다행히 생물의료와 반도체 통신 분야 선진화로 말미암아 민족의 새로운 희망이 열리고 있다. 21세기 산업혁명이 이 땅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대내외의 기대가 커져간다. 그러니만큼 대구는 바른 길로 들어섰다. 다만 보다 알찬 결실을 거두자면 과학기술과 시민의 만남이 잦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오창균(대구경북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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