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벤처박람회 열어, 말아.'

대구 벤처박람회를 두고 말들이 많다. 국내 3대 도시, 그것도 첨단산업도시를 지향한다는 대구에 이렇다할 만한 벤처 관련 박람회 하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만큼 '내실있는 박람회를 만들어 키워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형식적인 박람회는 벤처기업들의 마케팅이나 홍보에 도움이 안되니 차라리 '지역 업체를 세계적인 박람회나 마케팅 시장에 직접 연결하는 정책을 펴는 게 맞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개최를 원하는 쪽은 보육 단계 업체나 지원센터 등이 많은 반면 이미 기반을 잡은 업체들은 상당수 필요없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유력업체들의 호응을 얻지 못해서인지 지난 2003년 제3회를 끝으로 중단됐던 '한국벤처산업전'의 재개최 여부도 여전히 소원하다. 대구시 등 관련 기관들도 박람회 등 행사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하면서도 재개최 및 성과에 대한 부담으로 이렇다 할 입장을 취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 '무조건 하고 보자'는 식의 대규모 행사는 곤란

지난 2001년 부푼 기대를 안고 막을 올렸던 '한국벤처산업전'이 3년 만에 중단됐다. 큰 업체들의 외면 등 기업 참여가 저조하고 성과가 없었다는 게 중단 이유. 지역 업체들의 호응을 얻기 위해선 국내외 바이어나 투자자가 많이 참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이에 2003년 행사 땐 해외 바이어까지 초청해봤지만 역시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사)대구경북첨단벤처기업연합회 김재우 선임연구원은 "투자자 유치 등을 목적으로 지난 2001년 엑스코, 대구테크노파크 등과 함께 행사를 개최했지만 참가 업체들이 원하는 만큼의 성과나 효과가 없어 결국 중단됐는데 앞으로도 실질적인 성과를 장담하지 못하는 한 누구도 자신있게 다시 개최하자고 얘기하기 힘들 것"이라며 "박람회 성과가 저조했던 것은 지역적인 한계와 함께 IT에서 섬유까지 참가 업종이 너무 다양했기 때문인데 잡화상 같은 행사로는 호응을 얻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규모 행사 대신 세계적인 박람회나 해외 시장에 지역 업체가 참가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것. 특히 구매력 있는 바이어 등 전문가들도 산만한 대규모 행사보다 알찬 전문 전시회를 선호하기 때문에 이러한 행사들을 사전에 파악해 연결시켜 주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김 선임연구원는 "업체 지원 기관들의 입장에선 좋고 큰 행사를 하나라도 더 개최하는 게 좋지만 욕심만 가지고 무조건 할 수는 없다"며 "업체 중심, 업체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는데 현재로선 해외시장 진출이나 바이어 발굴을 위한 직접적인 지원이 최선인 것 같다"고 말했다.

▨ '이제 박람회 열 만큼 여건 및 환경도 성숙'

이젠 지역의 벤처기업 환경도 어느 정도 성숙한 만큼 지역 벤처업체들의 판로 개척을 위해서라도 박람회를 재개해야 하고, 이를 세계적인 박람회로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당장 성과가 없더라도 벤처 기업 활성화 및 판로 개척, 더 나아가 벤처 대표도시로 자리 잡기 위해선 박람회 등 이에 걸맞은 행사가 필요하다는 것.

김영문 계명대 경영정보학과 교수(계명대 벤처창업보육사업단 단장)는 "지난 90년대 말, 2000년 초가 벤처 보육 중심이었다면 이젠 박람회 등 행사를 통한 판로개척 및 활성화를 해야 할 때인데도 제대로 된 벤처기업 간 모임 창구도 없고 제품을 선보일 행사 하나 없다"며 "한국벤처대전의 경우 참여 업체를 모으기가 어렵고 성과와 효율성도 없다는 이유로 결국 중단되긴 했지만 행사 전문 업체를 선정해 다시 시도하면 제대로 된 박람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람회가 열렸던 2000년대 초반엔 벤처업계 및 코스닥이 전국적으로 하향세를 긋는 추세여서 투자자 모집이나 붐 조성이 힘들었지만 최근 몇 년간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 옥석이 가려지는 등 자연스럽게 구조조정됐고 올해부터 다시 호황기에 접어드는 등 벤처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는 만큼 전시회를 다시 개최해야 한다는 것.

또 정부가 제2 벤처 활성화 방안을 내놨고 대구시도 문화산업클러스터 조성 등 벤처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등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만큼 이러한 박람회 재개의 적기를 놓쳐선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 경쟁력 있는 전시회 육성 위한 '대연정' 필요

벤처업계 관계자들은 한국벤처산업전의 실패 요인으로 '잡화상 방식의 종합전'을 꼽는데 큰 이견이 없다. 행사의 전문성과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국내외 투자자들과 바이어를 불러오기가 힘들고 이 때문에 투자나 업체 및 상품의 홍보 등 성과도 거두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기존의 종합전시회 방식에서 벗어나 전자나 게임 등 전문 영역별로 특화된 전문 전시회로 방향을 전환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지역의 유망 분야인 메카트로닉스나 유비쿼터스, 모바일, 게임 등 산업군의 성장 규모에 맞춰 같은 산업군이나 특성을 가진 업종별로 전시회를 전문화해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특화된 전문 전시회를 여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현재로선 전문전시회를 개최한다고 해도 영역별로 참가할 만한 업체가 많지 않은 데다 그마저 유력 업체들의 경우엔 지역 행사에 참가를 꺼리는 경향이 있어 양질의 행사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 또 한국벤처산업전의 실패 요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 '박람회가 열릴 때마다 새로운 개발 상품을 출품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부담도 적잖은 실정이다.

이에 대구시, 경북도, 중소기업청 등 행정기관들은 물론 경북대, 영남대, 영진전문대 등 지역 대학, 대구 및 경북테크노파크, 연구소, 벤처기업 등 산·학·연·관이 모두 함께 모여 경쟁력 있는 양질의 박람회 개최를 위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한 벤처업체 관계자는 "각 기관에서 개최하고 있는 단편적이고 비효율적인 행사들을 통합, 대구·경북, 산·학·연을 아우르는 알찬 행사를 추진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기관들 간의 폐쇄적이고 비협조적인 관행에서 벗어나 마음을 열고 함께 하는 게 가장 중요한 선결 과제"라고 말했다.

대구전시컨벤션센터 관계자는 "실제 벤처산업전의 경우 참가비용이 기계나 섬유 등 일반 전시회 부스의 20%에도 못 미쳤는데도 불구하고 참가희망 기업이 많지 않았다"며 "종합전을 하든 전문전시회를 하든 간에 대구경북의 모든 관련 기관, 업체 등이 참가하고 다른 지역의 유력 업체들도 초청하는 등 참가 범위와 수준을 높여 경쟁력 있는 전시회를 만드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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