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했다. 주인공을 처절하게 짓밟는 악인은 언제나 복수의 대상이자 망가져야 할 '공공의 적'이 된다. TV드라마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주제가 바로 사랑과 복수. 그 중 복수극을 표방한 드라마는 다소 작위적인 설정이나 캐릭터의 상투성 등 여러 문제를 알면서도 빠져들고 마는 묘한 구석이 있다. 불쌍한 주인공의 화려한(?) 반전이 언제나 볼만하기 때문이다.
최근 복수의 화신들이 또 한번 안방극장을 점령할 태세다. 이들은 버림받았던 남자를, 한 가정을 풍비박산나게 만든 장본인을, 식물인간이 된 형의 원수를 향해서 복수의 칼을 겨눈다.
# '복수' 모티브 봇물
16일 첫선을 보이는 MBC '영재의 전성시대'는 영재(김민선)와 두 남자의 삼각관계 구도로 전개되지만 영재의 동생 은재(이유리)의 복수 역시 이 드라마의 한 축이다. 결혼을 앞둔 남자는 은재를 버릴 뿐 아니라 은재가 진행한 프로젝트마저 가로챈다.
지난달 31일 시작한 KBS2 '이 죽일 놈의 사랑'에서 이종격투기 K-1 선수 강복구로 변신한 비는 극중 톱스타 은석(신민아)이 자살시도로 식물인간이 된 자신의 형을 배신했다고 오해한다. 복구는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는 은석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SBS 금요드라마 '다이아몬드의 눈물'도 여자의 한(恨)과 복수를 다룬 드라마. 극중 형민(김성민)은 인하(윤해영)를 배반할 뿐 아니라 아이까지 죽게 하고 결국 다른 여자와 결혼한 인물이다. 이쯤 되면 복수는 반드시 필요한 공식. 죽은 엄마의 유골반지를 끼고 복수를 결심한 인하가 얼마만큼 처절하게 형민을 파멸시킬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주말 드라마 KBS2 '슬픔이여, 안녕'도 극중 정우(김동완)의 가족들에게 사기를 쳤던 박일호(한진희)의 부도덕함으로 악연이 시작되고, 가족들은 정우 생모를 중심으로 복수를 위해 결집한다.
# 복수의 다양한 변주
주인공들의 복수는 '보란듯이 성공하는 것이 가장 큰 복수'라는 예전의 고답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철저하게 계산적이며 고단수 전략을 구사한다.
'영재의 전성시대'의 은재는 자신이나 회사를 위해서도 배신한 남자를 가만둘 수 없다고 결심한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은재는 결국 일로써 못된 애인을 구렁텅이 속으로 몰아넣는다. 용서를 구하는 남자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복수를 완성한다.
'이 죽일 놈의 사랑'의 복구는 은석의 사설경호원이 됨으로써 복수를 실행해간다. 그러나 복구는 사랑을 복수의 도구로 사용하고 결국 파멸해간다. 복수의 대상인 여자를 자신도 모르게 사랑하게 되는 딜레마에 빠지는 남자의 슬픈 운명을 그린다. 이때부터 드라마는 복수극에서 본격 멜로 드라마로 바뀌게 된다.
너무나 착한 여자에서 복수의 화신으로 변신한 '다이아몬드의 눈물'의 주인공 인하는 형민의 주변사람은 물론 형민의 아내와 장인까지 끌어들여 결정타를 날린다. 인하의 주변 인물들이 형민을 향해 협공한다는 점이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생각나게 할 정도다.
# 왜 복수 드라마인가
역시 권선징악이다. 설사 권선징악이 실현되지 않는다 해도 실현된다고 믿고 싶은 게 우리네 심성이다. 물론 드라마에서 권선징악은 철저하게 주인공의 입장에서다. 한마디로 착한 주인공을 참혹하게 괴롭힌 나쁜 악당이 벌받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다. 이에 비해 최근의 '웨딩', '비밀남녀', '가을소나기' 등으로 이어진 '악역 없는 드라마'는 시청자들로부터 인기몰이에 한계를 드러냈다. 이는 이들 드라마에 '복수에 대한 절실함'이 결여됐다는 점이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버림받고, 짓눌리고, 배신당하고 모든 것을 잃은 불쌍한 주인공. 시청자들은 이 주인공들을 보면서 슬퍼하고 분노하다 주인공의 복수가 성공할 때 같이 기뻐한다. 복수의 대상이 무참히 망가질수록 더욱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노진규기자 jgroh@msnet.co.kr
사진: 이 죽일 놈의 사랑' 의 강복구 역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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