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랑거한스 세포 조직구 증식증' 앓는 두살배기 신유나 양

우리 부부는 늘 유나(2·여)와 함께였다. 남편이 1t트럭에 횟감을 가득 싣고 현풍장, 창녕 대합장 등 장터를 돌아다닐 때면 유나는 트럭 좌석에서 놀고, 나는 남편 일을 거들었다. 남편은 집에 있으라고 말렸지만 혼자 고생하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자연스레 갓난 유나도 내 품에 안겨 트럭을 탔다. 점차 일도 익숙해지고 둘 다 열심히 일한 터라 돈을 모으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대로라면 다시 예전처럼 횟집도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행복은 우리 가족에게 사치였을까. 유나가 7개월이 되던 무렵, 우리 가족에게 먹구름이 찾아왔다. 유나의 중이염이 좀처럼 낫지 않더니 잇몸이 헐기 시작했다. 동네 병원을 찾았을 때 면역력이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떨어진다는 진단을 받았다. 3개월 전 유나 배가 부어올랐을 때도 살이 오르나 했고, 피부가 백짓장처럼 창백한 것도 피부가 뽀얀 줄로만 생각했다.

3주 동안 열이 내리지 않아 찾은 큰 병원에서 '랑거한스 세포 조직구 증식증'이란 진단을 받았다. 혈액 종양의 일종으로 백혈구의 하나인 조직구가 비정상적으로 번식, 뼈·피부·간 등 몸 곳곳에 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병이라고 했다. 제때 치료받지 않으면 신경장애나 성장장애 등 후유증이 남고 급성 골수성 백혈병까지 발생할 수 있단다.

유나를 좀 더 세심하게 챙겨줬더라면 이런 병이 찾아왔을까. 장사를 하느라 정신이 팔려 유나를 트럭 좌석에 혼자 남겨두는 일이 많았다. 엄마, 아빠가 힘든 것을 아는지 유나는 혼자서도 잘 놀고 기저귀에 용변을 봐도 울지 않았다. 젖은 기저귀를 오래 차고 있어 엉덩이가 빨개져도 내색하지 않았다. 유나의 병은 이 때문이 아닐까.

유나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오빠인 동훈(5)이가 어른스러워졌다. 이젠 동생이 자신의 장난감을 독차지해도 울지 않는다. 할머니 손을 잡고 병원에 찾아왔을 때도 어린 녀석이 오히려 내게 '유나 두고 혼자 나다니지 마라'고 잔소리를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중 나온 내게 '얼른 유나 보러 들어가라'고 하는 걸 보면 집에서 내가 보고 싶어 울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항암치료받는 유나가 입원한 5층 병실 창 밖에는 놀이터가 보인다. 창 밖을 가리키며 놀이터에 가자고 조르지만 면역이 약한 유나에겐 바깥나들이가 무리다. 대신 1층에 살짝 내려가 병원 앞마당 비둘기를 보는 것으로 아이를 달랜다. 비둘기를 가리키며 '꼬꼬야'라며 해맑게 웃는 유나를 보면 내 가슴 속 상처는 더욱 깊어진다. 얼마동안 병원을 드나들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배정희(27·여·대구시 달성군 현풍면)씨를 더 힘들게 한다.

"빨리 나을 수 있기만 하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린 젊으니까 치료비는 벌면 된다고 다짐했죠. 하지만 이름조차 낯선 난치병에 입원치료 두 달 만에 치료비가 400만 원이 나오니 당황스럽더군요." 월 100만 원도 채 못버는 배씨 부부는 치료비 영수증을 보고 가슴이 떨렸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오는 20일 가족들만 초대한 채 결혼식을 올린다. 형편이 어려워 지금껏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 오랫동안 고대했던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유나의 아빠인 신상주(31)씨는 마음이 우울하다.

"아이가 아픈데 무슨 결혼식이냐 싶었지만 양가 어머님들이 더 미뤄선 안 된다고 하셔서 하게 됐지요. 신혼여행이요? 애 엄마가 안가겠다고 하더군요. 식이 끝나면 바로 병원으로 올 겁니다. 결혼식에 못 데려와 병원에 혼자 있을 우리 유나를 돌봐야지요."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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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랑거한스 세포 조직구 증식증'을 앓고 있는 신유나(2)양을 엄마, 아빠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상철기자 find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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