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숨어있는 명소-하동 고소성

산성에 서니…발 아래 섬진강 힘차고 도도하여라

하동-구례간 19번 국도. 섬진강을 따라가는 길맛이 남다른 도로다. 하얀 백사장, 푸른 강물, 가을빛이 가득한 갈대밭….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는 길. 영·호남을 가로질러 가는 데다 섬진강의 아기자기한 속살까지 살짝 엿볼 수 있는 길이다. 게다가 지리산을 끼고 있는 화엄사, 천은사 등 천년고찰과 화개장터, 최참판댁 등 볼거리, 먹을거리에 사계절 사람들이 몰려든다. 하지만 명성만 듣고 이곳을 찾았다간 정말 아름다운 또 다른 모습을 놓치기 일쑤. 섬진강의 아름다운 선과 큰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고소성에 올라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고소성은 아직 그 흔한 안내판도 없고 인터넷에서도 관련자료를 찾기가 어렵다.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어 들러볼 만한 '거리'가 있다. 분명 섬진강변 여행에 또 다른 묘미를 더해줄 '덤'이다.

차를 몰아 구마고속도로에 이어 남해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섬진강변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하동 나들목에서 나와 이내 19번 국도에 오른다. 하동을 지나 구례까지 내달릴 참이다. 굳이 다른 볼거리는 찾지 않더라도 가을빛이 가득한 강변을 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터. 길가 가판대마다 내놓은 대봉감에서도 가을의 정취는 물씬 난다.

가을에 취했다가는 자칫 목적지인 고소성을 지나치기 쉽다. 일단은 최참판댁 가는 길을 따른다. 고소성은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되는 최참판댁 뒤편 산 중턱에 있기 때문이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외둔삼거리서 우회전한다. 이곳서 2.2㎞를 더 들어가면 왼쪽으로 최참판댁으로 가는 길이 나있다. 고소성 가는 길은 여기서 갈라진다. 작은 표지판만이 왼쪽 '고소성 가는 길'과 오른쪽 '최참판댁 가는 길'을 일러준다. 이후부터는 고소성 안내표지판이 없다. 산쪽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가다보면 최참판댁 입구가 오른쪽에 있다. 이곳은 후문인 셈. 정문은 주차장을 지나 마을 안쪽에 있다.

'형제봉'이라고 표시된 왼쪽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한산사가 나온다. 이 절 또한 표지판이 없어 지나치기 쉽다. 화장실로 쓰이는 기와지붕 건물 위쪽에 차를 세울 만한 공간이 있다. 한산사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만만찮다. 왼쪽에 악양벌의 너른 들판을 둔 섬진강의 고운 물길이 한눈에 보인다.

해탈문이라는 바위틈을 비집고 들어가면 한산사다. 규모가 작다. 고소성 가는 길은 해탈문 아래쪽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가면 된다. 그런데도 굳이 좁은 해탈문을 지나 다시 길도 없는 절 아래로 내려와 고소성으로 향한다. 그렇다. 넓고 편한 길만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게 아닌가 보다. 때론 바위틈도 비집고 지날 수 있어야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오르막이 팍팍하다. 천천히 30여분 산길을 오르자 가지런하게 정리된 석성이 모습을 나타낸다. 성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의 느낌은 힘차다. 강은 S자 모양의 완만한 곡선이 아니다. 갈지자 형상의 힘찬 선을 이루고 있다. 19번 국도를 달리며 내다본 강의 이미지와도 너무 다르다. 이런 섬진강의 도도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도 고소성에서만 가능하다.

산성을 걸어본다. 백제의 침입을 저지하기 위해 신라가 축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석성이다. 섬진강 옆의 드넓은 악양들도, 강 건너편 백운산의 힘찬 기운도 한눈에 쏙 들어온다. 성은 아래쪽 평사리 상평마을의 드라마 세트장인 최참판댁과는 비교가 안 되는 감동을 전해준다. 30여 분의 짧은 산행 끝에 맛보는 대가치고는 엄청난 감동이다.

돌로 쌓은 성 위에 있는 소나무도 운치 있다. 소나무 아래서 강바람을 쐬다 작은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올라오는 하석태(44·부산시 부산진구 부전1동) 씨를 만났다. 해가 지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하씨는 약 800m에 이르는 성을 따라 돌아볼 것을 권했다. "사계절마다 나름대로 특색있는 곳입니다. 특히 겨울이면 사진작가들 외에는 찾는 이들이 없을 만큼 호젓합니다."

최참판댁은 지난 2002년 한옥 14동을 갖춘 전형적인 양반가의 고택모양으로 재현됐다. 또 그 아래로 복원된 초가가 돌담길을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자리잡고 있다. 초가는 모두 50여동. 대부분은 세트장이고 12동은 실제 마을주민들이 기거하는 집이다.

글·박운석기자 dolbbi@msnet.co.kr

사진·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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