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부터 내린 비 탓에 11월의 밤은 더욱 을씨년스럽다. 겹겹이 싸매는 우리의 습성과는 달리 훌훌 벗어 던지고 다음을 준비하는 자연 앞에 숙연해진다. 11월은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 이별과 상실의 계절이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이루는 밤'은 아내와 사별한 후 주요 우울장애에 빠진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아들과 단 둘이 사는 주인공 샘은 암으로 아내를 떠나 보냈다. 사별 후 2년이 지났지만 그는 아내를 보내지 못한다. 아내와의 아름다운 추억은 그를 과거 속에 붙잡아 두고 있다. 무슨 일에도 흥미가 없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귀찮다. 피곤하고 지쳐버려 슬퍼할 기력조차 없다.
아내를 잊기 위해 이사도 해보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새로 정착한 시애틀에는 매일 비가 내리고 샘은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친구들은 정신과 치료를 권해 보지만 그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누구나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을 맞게 되면 애도 과정을 보인다. 애도는 고인과의 관계를 재정비하고 새로운 관계변화를 형성하려는 정상적인 반응이다. 고인을 회상하거나 사진을 보면서 슬픔에 빠지기도 한다. 또 자주 울거나 잠을 자지 못하고 식욕 저하, 기억력 감소 등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런 증상은 사별 후 두 달 이내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주요 우울장애는 시간이 흘러간다고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고인에 대한 애정과 집착, 살아남은 자의 외로움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병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주요 우울장애는 극심한 죄책감으로 자살 등을 동반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
프로이트는 그의 논문 '애도와 우울'에서 애도 과정은 죽은 사람에게 정신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애착을 서서히 거두어들이는 과정으로 이것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주요 우울장애, 적응 장애 등 여러 가지 정신병리가 나타난다고 했다.
여덟 살 난 아들은 아빠보다 적응을 잘한다. 가끔 꿈속에서 엄마를 만나고 여자 친구도 사귀며 학교 생활을 잘한다. 아들은 무기력한 아빠를 위해 일을 꾸민다. 크리스마스 이브 심야 라디오 상담 프로그램에 전화를 걸어 우울증에 빠진 아빠를 위해 새엄마를 구해달라고 한다. 이 사연이 전국에 생방송되고 샘의 애틋한 감정은 전 미국 여성들의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샘은 아들의 도움으로 마술 같은 사랑을 다시 만나게 된다.
열 살 전에 부모를 여의거나 이별, 실패, 중요한 사람과의 불화 같은 것을 경험하는 것과 우울증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신의학자 아리에티는 생애에 가장 중요한 인물의 상실, 가장 중요한 인생 목표의 좌절 등이 우울증의 원인이라고 했다.
우울증 치료는 환자가 삶의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다. 자신이 정신적으로 이상한 상태여서 우울 상태에 빠진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생활 속에 있었다는 것을 인식시켜준다. 가족의 짐이 되느니 차라리 죽어 버리고 싶은 심정 등 환자의 심리 내부에 존재하는 우울의 원인이 되는 갈등을 풀어주는 것이 치료의 목표다. 잠 못 이루는 가을 밤, 불면의 원인을 되짚어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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