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구주택 총조사' 조사원들의 고달픔

문 안 열어주고 욕설까지…'잡상인 취급'

10일 오후 북구 동천동의 한 아파트단지. 조사원 강영미(41·여·북구 동천동) 씨가 한 가정의 현관문 앞에 섰다. 벌써 두 번째 방문. 수차례나 전화를 하고 메모를 남겼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강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짜증 섞인 목소리가 인터폰을 타고 흘러나왔다. "인구주택조사 나왔습니다." 반가움 반, 걱정 반. 그러나 문이 열리기는커녕 짜증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그거 왜 해야 되는데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설명을 하며 한참을 실랑이한 끝에야 문이 열렸다.

10여 분 동안 44개 항목에 걸쳐 조사를 하던 강씨는 문득 전날 밤 당했던 봉변이 떠올랐다. 몇 번이나 허탕친 끝에 찾아간 한 가구의 40대 남성이 강씨에게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퍼부으며 정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던 것. 강씨가 열흘 동안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돌아다니며 조사한 가구는 모두 132가구. 그녀는 "배우자의 직장이 어디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가 의외로 많아 놀랐다"고 털어놨다.

▲비협조에 곤욕=지난 1일부터 '2005 인구주택총조사'를 하는 조사원들은 고달프다. 절대 다수가 주부들로 구성된 조사원들은 응답자들의 비인격적 대우와 욕설, 비협조로 전쟁을 치르듯 조사를 하고 있다. 83만1천835가구를 조사해야 하는 대구시는 조사원 5천 명을 투입했다.

조사원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밤낮으로 연락하고 메모를 남겨도 피조사인을 아예 만나지 못한다는 것. 또 면전에서 무턱대고 욕을 하거나 '왜 그런 걸 묻느냐'며 끊임없이 질문하는 사람들도 조사원들을 힘들게 한다. 30, 40대 남성들의 응답률이 낮은 점도 특징.

동구 지저동 일대를 조사하는 방명숙(37) 씨는 "처음 조사를 나간 집에서 다짜고짜 왜 묻느냐며 막말을 해 당황했다"며 "결국 아무것도 못 물어본 채 나선 집의 가구주가 알고 보니 경찰 공무원"이라며 황당해 했다. 조사원들이 가장 가길 꺼리는 곳은 원룸. 조사 대상자를 만나기 힘들어 6, 7번은 방문해야 하는데다 혼자 사는 남성들이 많아 주부들인 조사원들로선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 조사원 오해숙(42) 씨는 "원룸에 혼자 사는 40대 남성이 술에 취해 '외로워서 못 적겠다. 방으로 들어오라'고 말해 혼비백산했다"며 "이 일 이후 밤에 원룸으로 가야할 때는 남편을 대동했다"고 귀띔했다.

▲달라진 세태=5년 전에 했던 조사에 비해 비협조적이거나 무조건 조사를 거부하는 가구가 크게 늘었다는 게 조사원들의 이구동성. 실제로 2000년 조사 때에는 8일째 응답지 회수율이 80%에 육박했지만, 올해 조사에서는 9일이 지나도 77.5%에 불과하다. 또한 이혼 등으로 인한 '나홀로 가정'이 크게 늘었다. 1995년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인구주택총조사 조사원으로 일했다는 안순덕(45) 씨는 "지난 조사에 비해 이혼 가정이 부쩍 늘었다"며 "한 집 건너 한 집이 이혼 가정인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특정 항목의 경우 조사의 질을 우려하는 조사원들의 목소리도 높았다. 동구 지저동 인구주택조사 책임자인 전송희 씨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실제 생활 수준보다 낮은 것처럼 응답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고, 강영미씨는 "혹시 세금이 오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인지 주택 보유 현황을 속이거나 장사가 안 된다는 얘기를 늘어놓기 일쑤"라고 했다. 정영숙(43) 씨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사생활 유출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며 "우편조사를 먼저 하고 응답하지 않은 사람에 한해 방문조사를 하는 방법 등을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통계청에 따르면 조사원이 업무 도중 당한 사고는 8일 밤까지 97건인 것으로 집계됐다. 개에 물린 경우가 35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등 낙상사고가 22건, 차량 사고 9건, 기타 31건 등이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 '2005 인구주택총조사'조사원인 강영미 씨가 한 아파트에서 조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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