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산에 살면 신선이 되지요. 신선 선(仙)자가 사람 인(人) 변에 뫼 산(山)자 아닙니까."
많은 전원주택을 찾아 다녔지만, 이석희(63) 해인사 우체국장의 집을 보노라면 그야말로 기가 막힌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가야산 국립공원 자락에 자리한 해인사. 앞으로는 매화산을 바라보고 뒤로는 가야산 정상을 등받이 삼고 있는 해인사 송림 사이에 그의 집이 있으니 천혜의 자연 환경을 절로 얻은 셈이다. 집 주변의 나무, 돌, 계곡, 산까지 정원(庭園)이 아니라 장원(莊園)을 이룬다고 해야 맞을 듯 싶다.
해인사 입구에서 3㎞ 정도 차를 타고 들어가면 길가에 집 한 채가 보인다. 그의 아들 이강(31)씨 부부가 거처하는 집. 마당에 차를 세우고 소나무로 우거진 오솔길을 300m 정도 걸어 들어가면 아담한 붉은 벽돌 집이 눈에 들어온다. 대구에서 30년 간 생활하다가 이곳으로 옮겨와 산 지 20년이 넘은 그의 집이다.
"해인사 원당암의 고 혜은 스님이 기거하셨던 집입니다. 제게 이 집을 맡으라고 한 스님의 큰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1980년 해인사 우체국장으로 부임했던 그는 3년 뒤에 이 집을 인수했다고 한다. 살면서 집 내부를 조금씩 수리했지만 외관은 그대로란다. 자연 속에 그리 튀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자리한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옛날 집 치고는 튼튼하게 잘 지은 집입니다. 시골에 2층집을 짓기가 어려웠던지 2층이지만 천장이 비스듬하지요."
건평이 40여 평. 혜은 스님의 뜻을 따라 조금씩 모아 넓힌 대지가 4천 평에 가깝다. 그의 집 앞에도 개인의 전원주택이 한 채 자리해 있었다.
"해인사 지족암의 고 일타 스님이 이 집을 '해인산방'이라고 이름 붙여 주셨습니다. 제 법명도 '해인심(海印心)'으로 지어 주셨어요."
집 2층에 부처님을 모신 제단이 그대로 있었다. 바로 옆방은 차실. 군데군데 놓인 낡은 골동품들이 집 주인의 취향을 엿보게 한다. 1층 큰방 앞 마루는 이 집의 운치를 더해준다. 원래 시멘트로 돼있던 것을 적송 나무를 깔아 초 칠만 하고 천장도 같은 나무로 만들어 자연과 조화되도록 자연스러운 느낌을 살렸다.
"제가 불교 신자인데 가톨릭 신자인 줄 아시는 분이 꽤 됩니다. 신부님들이 이곳에서 몇 일씩 피정하시기도 하고 한여름에는 집이 비어 있을 날이 없을 정도로 찾는 분이 많습니다."
가까이 지내는 화가, 문인들도 머리가 복잡할 때는 홀연히 이 집을 찾기도 한다고 했다. 수필을 쓰며 경주 문협 회원으로 활동했던 그는 해인사 소식지인 '해인'지에 두 세 줄씩 짤막한 글을 써 지인들에게 보내는 게 즐거움이다.
"해인사 우체국은 해인사 때문에 생긴 별정 우체국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래서 해인사 스님들이 신도들에게 보내는 우편물이 많습니다. 7월 보름과 1월 보름 스님들이 하안거(夏安居)와 동안거(冬安居) 수행을 마치고 암자로 돌아가실 때면 소포가 더 많아지지요."
집배원을 빼면 우체국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이 그를 포함해 4명. 그의 아들 이강씨도 사무원으로 일해 자연 가족적인 분위기다. 집집으로 편지를 배달하는 일보다는 쌈배추, 파프리카 등 지역에서 재배한 농산물과 팔만대장경 동판 등 택배 업무가 많다고 했다. 내년 1월 출산을 앞두고 있는 며느리 이영주(31)씨는 도자기를 배워 직접 도자기를 굽고 인터넷 등을 통해 판매하는 일도 한단다.
"2009년 정년 퇴임하면 우체국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넓은 터에 공부하는 공간도 만들고 좋은 일을 하며 살면 되지 않겠습니까."
곱디고운 붉은 빛 단풍, 송림과 산사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는 설경…. 어느 계절 하나 흠 잡을 데 없이 신비경에 젖게 하는 자연 속에 사는 느낌을 그는 이렇게 소박하게 털어놓는다.
"맑고 푸른 것을 늘 보니 마음이 고요하고 모든 게 편안합니다."
김영수기자 stel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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