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도심 재개발 부작용…'골목길 사라진다'

대구 도심의 무분별한 주택 재개발 사업 봇물로 동네마다 '골목길'이 사라지고 있다.

개발 이전 국공유 재산이던 주택가 도시계획도로(소방도로)가 아파트 사업 승인을 거치면서 사유지로 변경, 매각돼 동네 주민들이 길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경제성장'의 뒤안길에서 하나 둘씩 없어지는 골목길은 단순한 '추억'의 상실이 아니라 이제는 심각한 환경의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무분별한 도로폐지는 '바람길' 차단 등에 따른 열대야 및 열섬현상 등의 후유증도 우려되고 있다.

△자고 나면 없어진다= 대구 수성구 범어1동 일대. 이 동네에서만 벌써 세 차례나 소방도로 분쟁이 발생했다. 더욱이 동네주민들은 아파트 공사가 시작된 뒤에야 도로가 없어진 사실을 알았고 반발이 빗발쳤다.

아파트 사업 승인 후 용도 폐지된 폭 6m~8m 소방도로는 수성구에서만 3곳(857.2㎡). 다른 6곳(9천846㎡)도 용도폐지 절차를 밟고 있다.

수성구청 관계자는 "사업승인을 받을 때쯤 용도폐지 절차를 문의하는 사업자가 쏟아지고 있다"며 "일부는 인근 주민들과의 마찰이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수성동, 상동 일대에서는 재개발 대상에서 제외된 주민들을 중심으로 벌써 민원이 됐고, 앞으로 민원 가능성 높은 곳도 부지기수라는 것.

재건축이 잇따르고 있는 서구에서도 "주민의견을 구하지 않고 행정 관청이 제멋대로 소방도로를 폐지했다"고 주장하는 평리동 180가구가 구청 앞에서 항의집회를 여는 등 시내 곳곳에서 '공용도로'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달 대구지법에서는 수성구 범어1동 모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입대회)가 대구시청을 상대로 낸 '공용도로(폭 8m 도시계획도로)의 용도폐지결정 무효확인' 소송과 관련, 두 차례에 걸친 심리가 진행됐다.

'아파트 개발에 따른 주택가 도시계획도로 사유지화'의 가치판단 문제가 대구에선 처음으로 법정에 옮겨간 것.

입대회는 "일대 주택가를 아파트로 재개발하면서 주민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수성구민운동장 방향의 소방도로가 아파트 사유지로 바뀌었지만 사전에 주민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업자와 구청은 "아파트 지구단위 계획에 따라 도시계획심의와 교통영향평가를 거치는 등 적법한 절차를 밟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아파트 사업자들은 "국공유 재산이더라도 아파트 사업 승인이 나면 주택가 소방도로는 바로 용도폐지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파트 사업자가 국공유재산인 소방도로를 사들여 개발지로 편입하더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

더욱이 주택법을 적용하는 민영주택건설사업은 사전에 주민 의견을 구할 필요가 없고, 일단 사업승인만 따 내면 도로같은 기반시설은 한꺼번에 '의제 처리한다(승인 받은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 주민민원과 상관없이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재개발 승인권을 가진 행정기관이 주변 동네주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파악치 않아 '사태'를 키우고 있다. 정보공개 요청 결과 소방도로의 용도폐지를 놓고 소송에 휩싸인 범어1동 모 아파트의 경우 동사무소의 주민 동향 파악이 단 하루만에 끝났다.

△어떻게 해결할까?= 아파트 및 주상복합 개발이 봇물을 이루는 수성구는 이달 현재 99곳에서 개발사업을 신청했거나 승인 받았고 15곳이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대부분 도시계획도로를 낀 주택 밀집 지역이다.

결국 '바람길'이 사라져 도심 열대야 및 열섬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란 걱정이 나오고 있다. 특히 동신교에서 가창교로 이어지는 신천변 일대는 가장 많은 수성구 도시계획도로가 밀집한 곳으로 아파트 사업 승인 후 용도폐지가 잇따를 경우 수성구 전체 주민들은 '바람길'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실정.

이와 관련, 김타열 영남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기존의 도시계획도로는 단순히 한 지구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지구와 지구를 연결하는 거시관점을 지향해야 한다"며 "무분별한 도시계획도로의 사유지화를 방치하면 대구 도시계획의 기본 틀이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름밝히기를 꺼린 한 교수는 "현재의 도심 재개발이 개별지구단위계획으로 이뤄지다보니 무분별한 골목길 상실이 일어난다"며 "재개발 구역을 좀 더 넓게 확대, 권역별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한 뒤 개발한다면 도로가 없어지는 등의 주민 피해가 적어질 것"이라고 했다.

곽대훈 달서구청장 권한대행은 "행정기관이 허가를 내줄때 부근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필요할 것"이라며 "민원수렴절차를 좀 더 철저하게 한다면 예상되는 부작용을 미리 제거할 수 있다"고 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사진 : 아파트내 소방도로의 용도폐지 절차를 밟고 있는 대구 수성구 범어1동 주택 재개발 지역.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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