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떠도는 혼

떠도는 혼/허버트 J. 바트 엮음/이문희 옮김/다른 우리 펴냄

티베트, 달라이 라마, 'Free Tibet', 라마교, '설역고원'으로 표현되는 웅대한 자연….

눈에 익고 귀에 익은 문구들, 하지만 이러한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티베트인들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그네들도 죽고 사랑하고 싸우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은 만큼 그들의 삶에 대한 우리의 섣부른 예측이 전혀 얼토당토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시인이자 번역가 허버트 J. 바트가 편역한 티베트 단편소설선집 '떠도는 혼'을 펼쳐들면 그런 예측들이 보기 좋게 빗나간다. 5명의 이야기꾼들이 그려내는 티베트인들의 사냥 전통, 불교, 전승, 장례식 모습들을 따라가노라면 어느새 두렵고 낯선 땅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윤회의 바퀴 속에 돌고 도는 삶을 오롯이 목격하기 때문이다.

표제작 '떠도는 혼'은 중국 동북부 랴오닝성 출신 마 위안(52)이 쓴 작품. 이 소설은 치미라고 불리는 티베트 거지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웃옷에서 은화 스물 일곱 닢을 꺼내 10년 전 자신의 이층 돌집을 팔고 받은 돈이라고 화자에게 보여준다. 그러나 화자가 나중에 만난 이층 돌집의 주인인 젊은 여자는 남편의 조상들이 200여 년에 걸쳐 대대로 그 집에서 살았다고 주장한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을까?

화자인 나는 다시는 이층 돌집에 가지 않고, 그 젊은 여인도 만나지 않는다. 파꼬르 광장에서 가끔 치미를 보기는 하지만,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마치 한번도 나를 안 적이 없는 사람처럼….

티베트 작가 타시 다와(46)의 '풍마의 영광'은 아버지를 죽인 남자의 아들을 죽이기 위해 일생을 바친 남자의 이야기를 다뤘다. 마침내 살인자의 아들을 처단하지만 그 역시 체포돼 총살형을 당한다. 그런데 주인공은 다음날 친구의 천막에서 깨어나 자기가 죽인 남자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나'도 살아나고, '그'도 살아나 서로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다. 결국 그 동안 일어난 모든 일은 환상이었을 뿐일까.

'떠도는 혼'이나 '풍마의 영광'은 중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티베트의 아픈 역사를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환상적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 밑바탕에는 티베트 불교의 순환적 시간관이 버티고 있다.

이밖에 상하이 출신 작가 얀 겔링(47)의 '빨간 사과를 파는 눈 먼 여자', 티베트 출신 알라이(46)의 '초원 위로 부는 바람', 게양(33)의 '늙은 여승 이야기' 등 수록작을 통해 신비의 땅 티베트의 색다른 문화와 만날 수 있다. 책을 엮은 바트는 서문에서 티베트 작가들은 중국의 지배아래 소멸 위기에 처한 불교문화를 그리고 있고, 중국 작가들은 티베트 문화를 서구의 이성주의와 물질주의에 짓밟힌 중국문화의 정신적 대안으로 보고 있다고 말한다.

노진규기자 jgro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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