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이즈음 새벽녘이 되면 가끔씩 잠을 이룰 수 없다. 참을 수 없는 가슴의 통증으로 숨을 쉬기는커녕 움직일 수조차 없다. 두 손으로 가슴을 부둥켜안고 새우처럼 등을 구부려 끙끙거려 보아도 지독한 통증은 멈추지 않는다. 결국 베개를 안고 거실 소파에 앉아 새날을 맞곤 한다.
내가 이렇게 통증에 시달리는 이유는 뭘까? 바로 군시절 고참병으로부터 가슴팍을 심하게 구타당한 탓이다. 일요일 낮에 고참병이 부르는 것도 모르고 막사 뒷산의 양지바른 곳에서 누워 쉬었다는 이유였다. 고참병은 그랬다. "신병XX가 빠져가지고."
한번씩 한의원에 간다. 마치 톱니바퀴가 맞지 않는 기계의 부속품을 맞춰 넣듯이 골반과 척추의 흐트러진 균형을 잡아 주어야 한다. 바늘로 엉덩이를 찌르는 듯한 통증으로 엉금엉금 기어서 화장실로 갈 때도 있었고, 허리의 통증이 너무 심해 몸을 뒤척이지 못할 때도 있다.
내가 이렇게 통증에 시달리는 이유는 뭘까? 바로 군시절 각종 훈련과 행군 등으로 척추와 관절을 심하게 다친 탓이다. 엑스레이를 찍어 증상이 나오지 않거나 외상이 아니면 모두 '꾀병'이나 '엄살'이라고 했다. 무릎관절이 퉁퉁 부어올라 산 위에서 아래로 구르듯 내려와도 적절한 치료나 조치는커녕'군인정신'이 부족한 탓이라 했다.
얼마 전 일어난 연천 총기사건을 일으킨 김동민(22) 일병에게 사형이 구형됐다는 소식이다. 그 사건으로 인해 희생당한 고 이건욱 상병의 마지막 편지도 소개됐다. 게다가 최근에는 전역 2주 만에 위암 판정을 받고 숨진 노충국 씨의 군 진료기록이 조작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 군조직이 아직도 민주화하고는 한참 거리가 멀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 젊은 영혼들의 잘잘못을 떠나 이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그들의 영혼 앞에 선배로서, 또 기성세대로서 보다 선진적이고 민주적인 군조직과 의료체계를 제공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 미안합니다.
남북 분단 상황에서 북한군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어서일까? 우리는 아직도 '전투 중심의 군대'를 상정하고 있는 것 같다. 당연한 논리의 귀결이겠지만 전투에서는 생존과 승리의 쟁취만이 절체절명의 과업이다. 그 속에는 인류애와 평화 또는 박애와 같은 가치는 그저 교과서 속에 나오는 도덕률에 지나지 않는다. 군인은 상명하복에 의해 움직이는 집단이므로 하급자는 상급자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그런 조직에서는 장군만이 아니라 그 부인도 사병을 구두나 닦고 밥상이나 차리는 부엌데기로 여기기 십상이다. 그러니 장군이 시중을 드는 하인과도 같은 일개 사병의 따귀를 두어번 때렸다고 하여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와 같은 사실을 고자질한 그 사병은 곧바로 항명을 한 것이고, 사내답지 못한 짓을 한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의 후속세대로서 이 사회 이 나라를 책임질 젊은이들을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이제 우리도 군입대 제도의 다양성을 모색하고 인정할 때가 왔다. 과연 일률적인 기준 하에 운영되고 있는 징병제만이 최선의 제도인가? 주위를 보면 지금도 '군에 가고 싶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더욱이 군대 문화와 훈련에 탁월한 적응력을 가진 소위 '체질'들도 많다. 반면, 나처럼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운동기능이 떨어지고 허약하거나, 또는 군대에 도저히 적응하지 못하는 부류도 있다. 언제까지 이들을 한묶음으로 분류하여 헌법상 '의무'라는 이유로 강압적으로 군생활을 시킬 것인가?
단기간에 전격적으로 모병제로 전환하지 못한다면 단계를 정해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해야 한다. 아니면 징병제와 모병제를 아울러 활용하는 방안도 강구되어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나 사회 봉사를 위한 대체군복무제도의 도입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이다. 국가에 대한 충성이 어디 군복무를 통한 방법뿐이겠는가? 이제 한편으로는 군대조직의 선진화와 민주화를 모색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군복무제도를 시행할 때이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안보도 '건강한 신체와 정신'이 전제되어야 생겨날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 더 이상은 이 땅의 젊은이를 잃지도, 다치게도 말자. 기성세대의 현명한 판단과 결단을 바란다.
채형복/ 영남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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