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전 대구 동구 동촌동 ㄷ유치원 한자능력 시험장. 예닐곱 살짜리 아이들 27명이 6급 한자능력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날 일(日), 달 월(月), 하늘 천(天)….' 중얼거리며 고사리 손을 놀려 답안지를 채워가는 모습이 사뭇 진지했다. 고사장 창문 너머로는 할아버지들이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구 동구노인복지회관에서 파견된 '어르신 강사'들이다.
노인 일자리 창출 사업의 하나로 각 유치원에 파견된 할아버지 강사들이 지난해 6월부터 매주 2회씩 아이들에게 한자(漢字)를 가르쳐 왔다. 1세대와 3세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현대판 서당인 셈.
하지만 회초리로 훈육하는 엄한 훈장님 대신 마술을 펼치고 동화를 들려 주는 자상한 할아버지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친다. 전직 교장 출신인 팔순의 이영호(81) 할아버지는 "아이들은 집중력이 낮기 때문에 10분만 지나면 금세 딴청을 부린다"며 "한자와 사자성어가 쓰인 카드찾기 등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각종 놀이를 동원해 한자를 가르친다"고 비법(?)을 전했다.
이렇게 어울리다 보니 증손자뻘은 될 법하지만 아이들과 할아버지는 세월을 넘어 금세 친구가 됐다. 손원목(75) 할아버지는 "거리를 걷다 보면 한자 수업을 듣는 아이가 뛰어 와 품에 안기기도 한다"며 "그런 재미에 빠져 보수가 없어도 보충 수업까지 하며 더욱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어르신 강사들은 유아를 대상으로 한 한자교육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영호 할아버지는 "한자교육은 아이들의 식견과 단어에 대한 개념을 넓히는 장점이 있다"며 "정년 퇴직자들을 강사로 파견하면 노인 일자리도 늘릴 수 있고, 아이들의 한자 공부에도 큰 도움이 되는 등 '일석이조'"라고 강조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12일 한자능력시험이 치러진 동촌제일유치원에서 시험에 앞서 대구 동구노인복지회관 어르신들이 한자 부수 복습지도를 하고 있다. 이상철기자 find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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