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생들의 지적 수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많은 양의 독서를 하고, 토론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기 표현을 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예전에 비해 한결 똑똑해졌다고 칭찬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학교와 학원을 쳇바퀴 도느라 교과서 내용은 많이 알아도 실질적인 지적 능력은 떨어졌다는 비판도 심심찮게 들린다. 학생들의 유형이 아예 두 가지로 뚜렷하게 나뉜다는 교사들의 이야기도 있다. 굳이 선악을 구분하긴 어렵지만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해선 양자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까. KBS의 도전 골든벨 프로그램에서 최근 골든벨을 울린 김은정(안동여고 2년. 사진 위), 박정애(구미 오상고 3년. 사진 아래) 양에게 답을 구해봤다.
▲귓전을 울린 골든벨 소리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제목과 주인공을 연결하라'는 마지막 문제의 답을 화이트보드에 적고 머리 위로 번쩍 쳐드는 순간 김은정 양의 귀에는 우렁찬 종소리가 울렸다. 지난달 30일 청와대 녹지원에서 녹화된 한국방송(KBS)의 '도전 골든벨' 300회 특집에서 전국 100개 고교 대표 100명과 실력을 겨뤄 이뤄낸 쾌거.(27일 방송 예정)
그는 "42번 문제에서부터 혼자 남았는데 오히려 마음이 담담해지기 시작해 침착하게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었다"며 "학교 대표로 자원했으니 학교의 명예는 떨어뜨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골든벨을 울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김 양이 골든벨에 참가하게 된 것은 순전히 할아버지 덕분이다. 그는 "평소 골든벨을 즐겨보시던 할아버지가 '우리 손녀딸이 참가했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며 "학교 대표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당장 교무실로 달려가 참가를 자원했다"고 했다.
지난 3월 골든벨을 울린 박정애 양은 그새 학교의 유명인사가 돼 있었다. 사진촬영과 인터뷰를 하는 내내 창문으로 고개를 내 밀고 이름을 불러대는 짓궂은 친구, 후배들의 성화에 시달렸다.
▲상식은 독서에서부터
이들이 '골든벨'을 울릴 수 있었던 데는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호기심과 어릴 때부터 습관이 된 독서가 든든한 뒷받침이 됐다. 박 양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시골 학교에서 구미 시내로 전학을 가 한동안 친구 없이 외롭게 지냈다"며 "이 때부터 일주일에 2~3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고 말했다. 요즘 박 양이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역사 소설. 교과서에서는 딱딱하고 단편적인 지식만을 가르치지만 역사 서적에서는 역사적 사건의 배경과 의미,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양도 마찬가지. 더구나 300회 특집은 '독서 골든벨'로 진행돼 틈틈이 읽어둔 국내외 고전의 도움을 톡톡히 봤다. 그는 "지금은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이라 책과는 거리를 두고 있지만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사주신 세계명작전집 등을 즐겨 읽었다"며 "대회를 앞두고 요약 정리된 문학 참고서 등을 통해 다시 공부하긴 했지만 과거의 기억이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최근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은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그는 "자연계이다 보니 아무래도 소설류 보다는 학습에 도움이 되는 책이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인터넷도 잘 활용하면 보약
'넷세대'인 이들에게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는 상식도 무시할 수 없다. 박 양의 최근 취미는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는 것. 매일 밤 1시간씩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 게재된 '주요 기사'를 통해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 상황과 관련된 상식을 익히는 것이다. 그는 "밤 10시 30분까지 야간자율학습을 끝내면 피곤이 밀려오지만 고3이라고 해서 사회에 무관심하고 싶지는 않다"며 "논술고사가 없는 대학교에 진학할 예정이지만, 논술고사와 관계없이 인터넷 뉴스 보기는 빼놓지 않는 일과"라고 말했다.
김 양은 논술 관련 교육 잡지와 인터넷 서핑을 통해 세상을 접하고 상식을 쌓는다.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신문을 읽을 여유가 없어 한 달간의 주요 뉴스를 간추려 놓은 논술 잡지가 큰 도움이 된다는 것. 그는 "주말에는 인터넷으로 뉴스를 읽으며 새로 접하는 단어를 찾아보고 관련 지식도 꼼꼼하게 검색해 본다"고 했다.
이제 수능을 일주일 가량 앞둔 박 양은 덕성여대 문헌정보학과 진학을 목표로 마지막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책과 관련이 깊은 학과인 만큼 대학에 진학하면 그 동안 입시 때문에 참았던 독서를 원 없이 하겠다"는 박 양은 "책뿐만 아니라 신문기사, 논문, 인터넷 등 모든 분야를 통틀어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문헌정보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김 양은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이제 고 3에 진학하게 돼 본격적인 입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게다가 연말에 있을 골든벨 왕중왕전도 출전해야 해 '상식'공부에도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상식이요? 교과서에 얽매이지 않고 두루 아는 것이겠죠.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상식'이니까요."
글·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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