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盜聽 수사에 웬 '정치 쇼' 냐

어제 검찰이 임동원'신건 두 전직 국정원장을 구속 수감하면서 밝힌 범죄사실에는 1800여명의 주요 인사 휴대전화를 상시적으로 도청했다는 충격적 내용이 들어 있다. 여야 정치인을 비롯 경제인, 고위 공직자, 언론인, 대통령 친인척, 사회 각계인사의 전화번호를 미리 입력해 놓고 통화할 때마다 엿들었다고 한다. 인권을 강조한 DJ정권에서 최고 국가정보기관이 자행한 짓이다. 이런 판에 DJ쪽이 두 사람의 구속을 '무도한 일'이라며 반발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태도다.

거듭 말하지만 DJ는 국민에 고통을 준 가해자의 입장이다. 두 전직 원장의 구속이 아니더라도 이미 국정원 자체의 도청행위는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정치도의적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렇게 화를 내며 현 정권을 비난하는 것은 무슨 의도인가. 본인에게 불똥이 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액션인가. 노벨평화상 수상 치적에 반인권적 통치 불명예가 덮어 씌어질 것을 우려한다는 분석도 그래서 나오고 있다.

두 전직 원장의 사법처리를 미리 알았을 청와대가 "영장 청구가 지나쳤다"고 검찰을 비판한 것도 제스추어 냄새가 짙다. 수사 간섭이라는 비판을 예견하면서도 그런 의견을 언론에 공개한 것 자체가 호남민심을 의식한 립서비스다. 열린우리당이 인권운운하며 구속에 못마땅해 하는 것도 우습다. 두 사람의 인권보다 도청 피해를 당한 수많은 인권을 먼저 생각해 보았는가.

DJ는 그런 식으로 반발할수록 더 초라해 질뿐이다. 스스로 밝힐 게 있으면 국민 앞에 소명하고 사과하고 자숙하는 게 오히려 전직 대통령다운 태도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도 도청사건을 호남과 연결해 어리석은 판단을 하지 않길 바란다. 섣부른 '정치 쇼'는 오히려 호남민심을 더 자극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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