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장밋빛 인생

최근 종영된 '장밋빛 인생'은 코믹 터치 드라마가 판치는 요즘 모처럼 심금을 울리는 내용이었다. 신파조이긴 했지만 여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삶이 하도 가여워서 눈물이 절로 흘러내렸다.

그중 한 장면이 진한 여운으로 남아있다. 아내를 떠나보낸 후 슬픔에 잠긴 남편의 귀에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 "···이제 와 생각해 보니 한 번도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없네···. 여보 사랑해···." 진흙길에 빠진 차를 살피고 있는 남편을 향해 혼신의 힘을 모아 휴대전화에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서양의 부부간 애칭은 다양하다. 허니(honey), 스위티(sweety), 베이비(baby), 슈거(sugar), 쿠키(cookie) 등등. 하나같이 달착지근하다. 몸이 간질거려지는 '초(超)느끼' 호칭도 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렇게 부르지 않으면 혹 사랑이 식은 게 아닐까 의심한다. 습관적 립서비스가 되기 쉽다. 그러다 보니 "허니!", "스위티!"를 입에 달고 있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목소리를 착 가라앉히고 "사랑이 식었어. 함께 사는 건 위선이야"라고 한다.

반면 우리네 부부 사이엔 애칭이랄 것이 없다. 기껏 "~ 아빠", "~엄마" 정도다. 경상도 남편은 더 심하다. "보래이" "어이"가 아직도 흔히 쓰이고 있다. 좀 다정히 불러보라치면 말 떨어지기 무섭게 "뭐 잘못 묵었나?" 퉁명스레 면박당하기 일쑤다.

사랑에도 온도가 있다고 한다. 서양식 사랑은 살이 델 듯 펄펄 끓다가도 어느 순간 빙하처럼 싸늘히 식기도 한다. 감정 따라 널뛰기를 한다. 그에 비해 우리네 사랑은 그리 뜨겁지도 차지도 않다. "저 웬쑤" 궁시렁거리면서도 "징그러운 정 때문에" 평생을 함께 가는 부부들이 많다. 오래 온기가 남아있는 온돌 같다.

테인셔우드의 '죽기 전에 꼭 해볼 일들'은 거창한 것들이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것들이다. '혼자 갑자기 여행을 떠난다','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지하철에서 낯선 사람에게 미소를 보낸다'···. 훗날 후회 안 하려면 이 한 가지를 되도록 빨리 추가시켜야 할 것 같다. "남편(아내)에게 '사랑해'라고 말해준다". 아무리 근사한 장밋빛 인생도 너무 늦게 오면 별 소용없지 않겠는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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