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위해 노력해 주신 대구·경북지역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6일 고국 대한민국을 찾은 로버트 김(65·한국 이름 김채곤) 씨. 그는 자신의 고통이 고국 한반도 분단이 낳은 부산물일 뿐,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대신 자신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희생자라고 이야기했다.
미 해군정보국 군무원이던 김씨는 지난 96년 9월 국가기밀 유출 혐의로 미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돼 징역 9년, 보호관찰 3년과 가택 수감 등으로 오랜 고통을 겪다 지난 달 5일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고 지역민들의 노력에 보답하기 위해 19일 대구를 찾았다.
긴 고통의 시간동안 한국 정부는 그를 외면했지만 대신 국민들이 나서 그의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고 대구·경북에서도 동참자들이 줄을 이었다.
김씨는 지난 96년 2월 이후 처음 찾는 고국이 너무 빠르게 변화돼 낯설기만 했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이렇게 보편화됐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어떻게 전화통화를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더군요. 문화충격을 받은 셈입니다."
이날 대구를 찾아 자신의 구명운동에 나섰던 대구흥사단 최현복 사무처장 등을 만나 감사의 인사를 전한 김씨는 오는 24일까지 자신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전국의 고마운 사람들을 만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분들은 저를 도왔던 걸 잊었을지 모르지만 전 결코 잊지 않고 있어요. 외로웠던 감옥생활도 제게 사랑, 격려, 성원을 보내주신 국민들 덕분에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 돌아가서는 늙은 나를 찾는 곳이 있다면 기꺼이 일을 해야지요."
'진정한 애국자'라는 세인의 칭송이 김씨에겐 어색할 뿐이라 했다. "전 애국자 반열에 들 만한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아직 목숨도 붙어 있으니 그럴만한 자격도 없고요. 다만 평화를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 뿐입니다."
그는 형량이 최종 결정되기까지 무기징역을 언도받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떨었던 것은 지금도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를 힘들게 한 것은 가족들. "저 때문에 가족들 고생이 많았지요. 더욱 가슴 아픈 것은 부모님의 임종을 지켜 보지 못했다는 겁니다. 조금만 더 사셨더라도 자유를 찾은 제 모습을 보셨을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 부모는 지난해 2월과 6월 자유의 몸이 된 아들의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김씨는 지난 7일 전북 익산 부모님의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사진 : 6일 고국 대한민국을 찾은 로버트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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