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보스턴일기-지식의 디즈니랜드에서

윤진호 지음/한울/1만6천 원

하버드, MIT 학생들은 교수가 요구하는 엄청난 공부량을 어떻게 따라갈까. 대개 학생들은 '생존해 가고 있다'고 둘러 대답한다고 한다. 1주일에 3과목만 듣는다 해도 합쳐서 최소 500~600쪽은 읽어야 한다. 거기에 잦은 리포트, 팀 프로젝트, 그리고 문제풀이를 제출해야 하며 불시에 시험도 자주 본다. 물론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도 있다. 그러나 학생들은 죽도록(?) 힘들지만 즐기면서 공부한다. 바로 이런 대학과 학생들의 풍부한 지식 축적이 미국의 정치·경제를 움직이는 '엔진'으로 작동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흔히 미국의 힘은 세 곳에서 나온다고 한다. 세계정치 중심 워싱턴, 세계금융 산실 뉴욕, 그리고 세계지식과 정보의 허브 보스턴을 두고 말한다. 전 세계를 주무르는 지력·정보력 제국주의는 바로 하버드와 MIT가 있는 이곳에서 잉태된다.

책을 훑어보면 보스턴 대학가는 이 책의 부제로 붙은 '지식의 디즈니랜드'라는 별칭이 전혀 무색하지 않다. 세계의 굵직한 이슈와 담론을 담은 세미나와 강연이 거의 매일 펼쳐진다. 내로라하는 전문가와 전·현직 대통령, 정치인, 노벨상 수상자들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들려준다.

저자는 1년간 MIT의 교환교수로 머물면서 약 150회에 달하는 세미나에 참석했다. "하버드와 MIT를 누비면서 가장 부러운 것은 고색창연한 건물도, 저명한 교수진도, 막강한 연구비도 아니었다. 바로 독특한 세미나 제도와 공부하는 학생들이었다"는 저자의 회고처럼 보스턴은 미국사회를 이끌어 가는 지식발전소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보스턴 일기'는 바로 그런 것을 보고 기록한 관람기인 셈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적 역사학자 하워드 진(보스턴대) 교수의 강연을 들춰보자. 주제는 '미국의 테러전쟁을 묻는다'. "아프간에 대한 미국의 전쟁이 엄청난 민간인 사망자를 낳고 있다. 이는 테러리즘의 한 형태일 뿐이다. 냉전시대에도 전쟁은 공산주의와의 싸움을 구실로 미국의 팽창주의를 정당화시킨 것에 불과하다. 끝없는 전쟁, 그리고 이기지 못할 전쟁을 미국은 계속하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주제들만 해도 9·11사건, 엔론의 붕괴, 중국의 인권문제, 북한의 개방, 일본의 IT산업,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등 눈길끄는 대목이 많다. 미국사회와 세계의 진로를 둘러싼 미국 내 이념적·종교적·인종적 갈등과 해법도 여과 없이 논의된다. 또 미국 전·현직 관료들이 말하는 백악관 내부사정,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 이란 용어를 사용하게 된 계기 등 뒷이야기도 전한다.

저자의 안내로 세미나장에 들어서면 제프리 삭스(하버드대 국제개발연구센터 소장), 스텐리 피셔(MIT 교수), 로버트 루빈(전 재무장관), 로렌스 스머스(하버대대 총장) 등 거물들을 만나게 되는 것도 매력이다. 하버드, MIT의 문화와 역사, 에피소드들도 맛깔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노진규기자 jgro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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