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흑사병의 귀환

수잔 스콧·크리스토퍼 던컨 지음/ 황정연 옮김/ 황소자리 펴냄

14세기 중엽 전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혹은 페스트)은 발생 3년 만에 유럽인의 절반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3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유럽 대륙 전체를 공포에 떨게 했다. 이 흑사병도 1666년 런던 대화재 이후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사람들도 이제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과거의 역병이 됐다. 두 사람의 저자가 흑사병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기 전까지는 그랬다.

두 사람이 공동연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역사학자인 수잔 스콧이 우연히 발견한 역병에 관한 기록이 발단이 됐다. 동물학자인 크리스토퍼 던컨과의 공동연구는 2001년 '역병의 생물학'이라는 책으로 나왔다. 이제껏 우리가 흑사병에 관해 알고 있던 모든 상식을 뒤집은 내용으로 책은 발간 즉시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이후 쏟아지는 사람들의 관심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이 책 '흑사병의 귀환'이다. 저자들은 이번 저술에서는 '인류 역사 최악의 연쇄 살인마' 흑사병이 어떠한 모습으로 유럽 대륙을 덮쳤는지를 역사 자료를 통해 살펴본다. 그리고 그 살인마에 대항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모습도 들여다본다. 그럼으로써 흑사병의 정체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할 경우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도 알아본다.

1347년 10월 시칠리아 섬에서 시작된 '어떤 곳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몹쓸 전염병'의 전파과정을 쫓아가는 책의 내용은 의학 추리소설을 방불케 한다. 알 수 없는 역병으로 황폐화된 도시와 마을에 대한 옛 기록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단편적인 사실들을 꿰어맞추는 과정은 수사과정과 닮아 있다. 독자들도 갖가지 자료들이 전해주는 역사자료를 기반으로 '연쇄 살인마'의 몽타주를 완성해 가는 동안 책을 놓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13년간의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 새로운 교훈을 던져준다. '흑사병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 뒤에 숨어 잠복 중일 뿐이다'라는 것.

흑사병만이 문제가 아니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은 여전히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2002년말 중국 광둥성에서 발생한 SARS는 세계 경제를 출렁이게 했다. 저자들은 언제 어떠한 형태로 다시 닥칠지 모르는 역병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저자들이 '수사' 과정에서 밝혀낸 사실은 단순한 공포만을 전해주는 것은 아니다. 유럽인에게 널리 분포하는 에이즈 항체 CCR5-델타32 돌연변이 인자와 흑사병 항체가 동일하다는 것은 인류에게 하나의 희망이 된다. 전파경로도 파악됐고 감염방지 방법도 개발됐지만 의학적으로 손쓸 방도가 없을 만큼 무차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에이즈에 유난히 낮은 감염률과 사망률을 보이는 것이 유럽인들이다. 저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그 원인은 유럽인의 조상들이 몇 백 년에 걸쳐 흑사병과 대항하며 내성 항체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강인해진 저항력에 적절한 대비책만 갖춰진다면 인류 멸망이라는 묵시론적인 미래도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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