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대입 수능시험일이다. 몇 년 째 지켜본 시험장의 모습은 언제나 비슷했다. 주변은 새벽부터 선배를 응원하려는 고교 1, 2학년생들로 떠들썩하고 만세다, 헹가레다 한 바탕 응원전이 끝나고 나면 문 앞은 기도하는 엄마들의 차지가 된다. 그렇게 한 시간 한 시간이 끝나고 나면 마침내 밖으로 밀려나오는 수험생들. 모두의 표정에는 수능이라는 큰 산을 넘었다는 시원함이 비친다.
같은 문제지로 같은 시간에 시험을 치른다는 건 대단히 공평해 보인다. 내 문제는 어려웠느니, 네 문제는 쉬웠느니 시비할 이유가 없고 주어진 조건의 차이를 따질 필요도 없다. 그러나 수험생들의 속내를 보면 시험에는 참으로 운수라는 게 작용하는 듯싶다.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똑같이 공부를 했고 똑같은 시험을 치렀는데, 아는 문제를 실수하거나 답안 표기를 잘못 해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유난히 잘 아는 문제들이 나왔다거나 감으로 찍은 문제가 맞았다는 이도 있다. 참으로 불공평해 보인다. 피를 말리는 시험에 운수라는 게 그리 작용한다면 왠지 억울하다.
그러나 이 운수조차도 실력이라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평소 모의고사를 치거나 문제집을 푸는 이유가 이런 운수 소관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므로, 충분히 연습됐다면 피해갈 수 있다는 얘기다. 긴장감을 떨치고, 마음을 편히 하라고 당부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운수를 이기고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조건을 스스로 만들라는 조언이란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올해 수험생들은 운수 탓을 좀 더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불거진 수능부정 사건 때문에 부정행위 단속이 대폭 강화됐기 때문이다. 부정행위나 의심 살 행위를 하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바짝 긴장하고 있는 수험생들로선 마음이 그리 편치 않을 것이다. 자필 확인이라든가, 응시원서 대조라든가, 부정행위에 대한 잡다한 안내조차 신경에 거슬릴 수 있다. 시험에 집중하기 힘들게 만드는 요소들이 그만큼 많아진 것이다.
수험생 입장에선 이 모든 과정이 시험에서 평가하고자 하는 내용이라고 받아들이는 게 현명하다. 단순히 교과 지식을 얼마나 머릿속에 담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지식을 주어진 여건 속에서 얼마나 잘 풀어내고 활용할 수 있느냐를 평가하는 시험이라고 여기라는 것이다. 이는 곧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말한다. 스스로를 얼마나 다독이고 흔들리는 집중력을 가다듬느냐가 승부의 관건이 되는 셈이다.
마음 어수선한 수험생들에게 적당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조선 초 좌의정까지 오른 허조의 극기 공부다. 어느날 밤 허조가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도둑이 집에 들어와서 물건을 모두 가져갔다. 그는 졸지도 않으면서 마치 진흙으로 만들어놓은 인형처럼 앉아 있었다. 뒤늦게 집안 사람들이 이를 알고 답답해 하니 허조는 "이보다 더 심한 도둑이 와서 마음 속에서 싸우고 있는데, 어느 겨를에 바깥 도둑을 걱정하리오"라고 했다. 내 마음 속의 도둑 잡기에 힘을 쏟는다면 내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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