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대입 수능시험일. 전국의 수험생들이 그동안 쌓아온 공부를 검증받는 날이자 매듭짓는 날이다. 수험생들의 힘겨움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지켜보는 가족과 교사들의 노력도 그에 못지않았다. 그래서 시험이 끝난 후에는 서로가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해주는 날이기도 하다. 마침 그런 땀과 사랑이 어우러진 한 어머니의 편지를 구할 수 있어 소개한다. 시험 전날 밤 혹은 시험을 끝낸 저녁에 가족이 함께 읽으며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나무들이 옷을 벗으면서 풍경들이 더욱 투명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는 계절. 아들아, 오늘 아침 교문으로 들어가는 너의 뒷모습을 보며 엄마는 까닭모를 눈물과 격한 감정이 왈칵 솟아올라 잠시 하늘만 멍하게 바라보며 서 있었단다.
내일이면 네 청소년기가 한 단락을 짓는구나. 그 동안 정말 수고했다. 내일 시험을 앞두고 이 엄마는 네가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안해지기를 바라면서 이렇게 몇 자 적어본다.
많은 엄마들이 말하더구나. 시험의 고통을 엄마가 대신할 수만 있다면 대부분 엄마들이 기꺼이 그 고통을 떠맡을 거라고. 그러나 난 그 때마다 그렇게는 하지 않겠다고 생각을 했단다. 너를 사랑하는 마음이 덜해서가 아니라 그게 진정 너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다른 엄마들도 실제로는 내 마음과 같을 것이다.
아들아, 초등학교 2학년 때 운동회를 생각해 보렴. 달리기를 하기 전에 네가 나에게로 달려와 '엄마, 등수 안에 못 들면 어떡해요?'라고 했을 때 나는 '등수 같은 것은 생각하지 말고, 옆 사람도 생각하지 말고 너 혼자 뛴다고 생각하고 그냥 열심히 뛰어봐'라고 했지. 평소 연습 때 6명 중에 4등 하던 네가 그날은 2등을 하지 않았느냐. 그 후 시험을 칠 때마다 나는 너에게 '그냥 열심히 해라'란 말만 되풀이 했고 매번 너는 잘 해 오지 않았느냐.
그래. 고3생이 있는 모든 가정이 서로 비슷할 것이다. 엄마는 언제나처럼 아들, 딸이 달릴 때 그냥 힘차게 응원하는 사람이란다. 이 땅의 모든 엄마는 자식이 등수 안에 들든 안 들든 운동회 때마다 점심을 함께 먹기로 약속하고 전나무 혹은 백양나무 밑에서 자식이 잘 뛰기를 기도하며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란다. 모든 수험생의 가정과 부모는 그늘과 맛있는 점심이 있던 운동회 때의 그 나무 밑과 같은 것이 아닐까.
아들아, 시험을 앞 둔 너에게 또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네가 4학년 때인가 아빠와 함께 산행을 갔는데 비가 내린 다음날이어서 골짜기에 물이 콸콸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리가 산 중턱 쯤 갔을 때 계곡이 우리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폭이 약 1m 밖에 안 되었는데 너는 혼자서 건너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 때 아빠가 두려워하지 말고 '이것쯤이야'하고 가볍게 생각하고 뛰면 된다고 했지. 너는 그렇게 따라 해서 쉽게 건널 수 있지 않았느냐. 젊은이답게 자신 있게 뛰어보렴. 쉽게 건널 수 있을 것이다.
아들아, 시험을 목전에 두고 혹 불안한 마음이 생겨나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신났던 일과 자신만만하게 해치웠던 일들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격려하길 바란다. 너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참으로 우리를 기쁘고 행복하게 해 주었다. 엄마는 아들이 이렇게 훌륭하게 자라서 이런 시험을 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단다. 별보고 나가서 별보고 집에 온 그 고된 여정들이 돌이켜보면 하나 같이 축복이고 행복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들아, 내일 시험은 힘찬 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에 불과한 것이란다. 성년식을 치르듯이 엄숙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내일을 맞이하자.
아들아, 어느 시인이 '겨울은 사람을 더 깊이 품어 준다' 라고 노래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입시 때마다 날씨가 다소 쌀쌀한 것은 시험을 앞두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더 따뜻하게 서로를 격려하고 품어 줄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들아, 어릴 때 달리기를 할 때처럼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몇 등 할까도 생각하지 말고, 힘차게, 넘어지지 말고, 끝까지, 그냥 달리기만 하여라. 우리는 너를 믿고 사랑한단다. 아들아. 내 딸들아.
이미애(경신고 3학년 어머니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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