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너에게도 이제는 친구가 생겼구나. 친구를 집에 데려 오다니……. 정말 보기 좋구나. 부디 친구와 사이좋게 잘 지내거라.
6·25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란다.
전쟁을 치르느라고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했지. 입성도 부족한데 집마저 부서져 잠 잘 곳조차 없었지. 그러나 무엇보다도 먹을 것이 부족해서 크게 고생을 했단다. 어떤 곳에서는 앞에 사람의 입에 든 음식도 쳐내어 빼앗아 먹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어. 이렇게 먹을 것이 귀하다 보니 이웃간의 정도 많이 줄어들었지.
그 무렵, 어떤 아이가 다음과 같은 일기를 썼다는구나. 이 일기는 금방 세상에 널리 알려져 눈물을 자아내게 했지.
1953년 11월 22일 ○요일 맑음
내 친구 태용이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태용이와 나는 골방에서 팽이를 깎으며 놀고 있었다.
태용이는 며칠동안 밥을 못 먹었는지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말라붙은 밥알을 주워 무심코 입으로 가져갔다. 그 말라버린 밥알이 태용이의 입 속에서 뽀지직 부서졌다.
그 때였다.
"영철아! 이리 좀 오너라."
어머니께서는 나를 부르셨다.
나는 어머니가 계시는 부엌으로 달려갔다.
부엌 바닥의 작은 상위에는 고깃국이 한 그릇 놓여져 있었다.
"아니, 이거 웬 거여요?"
"응, 식당에서 일을 해주고 오는 길에 간신히 한 그릇 얻어왔다. 자, 먹어라."
어머니는 숟가락을 내 손에 쥐어주셨다.
"싫어요."
"싫다니? 얼마나 힘들게 얻어왔는데."
어머니는 의아한 얼굴로 나를 들여다보셨다.
"방에 태용이가 있잖아요. 태용이와 갈라먹어야지, 나 혼자 어떻게 먹어요?"
나는 국그릇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아니다. 아직 네 아버지도 이 국을 구경하지 못하셨다. 네 아버지는 아침부터 지게를 지고 나가 지금까지 입 한번 다셔보지 못하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국그릇을 빼앗아 반으로 가르셨다. 그리고 반은 뚜껑을 덮어 찬장에 넣고 반은 억지로 나에게 퍼 먹이셨다.
나는 방에 있는 태용이 생각이 나서 도무지 넘어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우리 식구들을 위해 애쓰신다. 나도 안다.
그런데 방에 있는 태용이에게도 갈라준다면 내 마음도 편할 것이고, 또 나중에 내가 태용이 집에 가도 고깃국을 얻어먹을 수 있을텐데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다.
어머니가 고맙기는 하지만 오늘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일기였지.
정말 어려운 시절의 이야기였단다.
"자, 이 고구마를 우리 동네 경로당 할머니들께 좀 갖다 드리고 오너라."
심후섭(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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