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문화 트렌드

'문화' 또 다른 세상?

우리는 매일 문화 안에서 살고 있지만 문화를 모른다고 한다. 문화라는 말이 요즘처럼 화두가 된 적이 있을까? 문화에 대한 수많은 질문과 대답의 홍수 속에서 과연 문화가 우리 삶 속에 얼마나 느껴지고 보여지는지 생각해 본다.

최근에는 문화에 대한 리서치도 많이 한다. 문화생활에 대한 지표로 문화 활동 참여 횟수를 조사하기도 하고 시민들이 문화예술 교육은 얼마나 받고 있는지 통계를 내기도 한다. 이처럼 지금 문화는 우리 삶을 이루는 어떤 척도와 기준이 되어 영향력을 발휘하는가 하면 손을 뻗으면 바로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친숙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대다수 사람이 체감하는 문화는, 이 세상 안에 들어있는 또 다른 세상으로 바라보는 듯하다.

왜 그럴까? 아마도 그것은 문화라는 용어 자체가 다의미적(多意味的)인 데다가 물질적인 의미가 강한 문명과 대조적인, 인간의 정신세계를 중심으로 표현한 말이라는 데에 그 특수함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문화는 동시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형태이자 생활의 표현이다. 그래서 문화는 우리 곁에 붙어있는 또 하나의 생명체다.

그러나 이처럼 문화가 우리 삶과 붙어있다고 하면서 문화를 모른다고 말한다는 것은 참으로 모순적이다. 그렇다면 문화를 모른다는 것이 누구를 탓할 문제인가? 이런 물음은 누구나 문화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 아닌 문화와 삶의 단절을 막으려는 노력에 관한 문제다.

언제였는지 모른다. 서울의 많은 도로들이 어느 순간 확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다. 육교가 없어졌고, 고가도로도 많이 없어졌다는 것을 무심코 알게 되었다. 그것도 그들이 철거되고 나서 한참 후에 말이다. 뿐만 아니다. 도시가 변해가고 있었다.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동네 초등학교가 어느 날 보니 담이 없어졌다. 나무가 담이 되었고, 운동장엔 잔디밭 구장도 생겨났다. 학교가 푸르게 변하고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흔히 사람들은 오래된 그 무엇을 없애려고 한다면 예산 낭비라든가, 보존의 미덕을 모른다는 등 많은 질타를 쏟아낸다. 그러나 너무 조용했다. 우리는 공통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그런 변화가, 얼마나 마음을 여유롭게 하는지 말이다. 만약 조금의 불편함, 거슬림이 있었다면 절대 조용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학교의 나무 담을 보면서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담 없는 세상에 더불어 푸른 세상을 보는 것 같아 더욱 좋았다. 과거와 같이 회색빛 콘크리트로 높게 쳐진 담 안에서 아이들은 탈출을 꿈꾸지 않았을까? 그 탈출의 꿈이 나무 담 안에서는 어떻게 변했을까?

고가도로가 없어지면서 생긴 도심의 여유로움, 한쪽 구석을 장식한 벽화들. 그런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이렇게 조용조용 살며시 이루어지는 도시의 변화 앞에서 사람들도 변하고 있었다. 높은 육교, 담이 없어진 탁 트인 공간에서 마음이 열리고, 우연히 걷다가 만나는 알듯 말듯 한 그림이나 조각품들을 보면서 엉뚱한 상상도 해보고 말이다. 사람들이 변하고 문화가 변하고 있는 순간이다.

만약 문화에도 모드(mode)가 있다면 그동안 우리의 문화는 한국 사람들처럼 빠른, 바쁜, 빨리빨리 모드로 지어지지는 않았을까? 그 빠름의 문화에 이제 느림의 문화가 조금씩 비집고 들어가야 할 때가 되었다.

문화예술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 자신도 문화에 대해 바라는 것이 있다. 대구 오페라하우스를 비롯한 최근의 멋진 공연장들이 투명한 유리로 속내를 열어보이듯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문화는 열린, 그래서 소통하는 세상이길 바란다. 그리고 비록 느리게 움직인다 해도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진정 풍요로운 문화를 바란다.

유인촌(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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