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오늘은

내가 앉은 자리서

짚단 타는 냄새가 난다

참 참

좋은 곳이구나

햇무를

스무 개쯤 썰어

볕 좋은 곳 발에다 널고 돌아서니

봄이 먼저 와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진다

벌써 왔구나

내 동그란 창문에

봄 닮은 당신이 벌써 왔어…

햇무가 잘 말라

당신 오시는 봄에 맛깔스런 몸으로

밥상에서 그대 반기면

좋겠다

김미향(1955∼) '햇무를 썰며'

모든 인간은 사랑을 먹고 살아갑니다. 밥만 먹으면 살아갈 수 있는 줄 알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밥은 육신의 삶을 겨우 지탱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정신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사랑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 이성간의 사랑, 친구간의 사랑, 불우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돌보는 사랑, 신앙 속에서 경험하는 사랑… 우리에게는 이처럼 풍성한 사랑이 항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마음의 풍파와 굴곡을 겪지 않고 정신적 안정감 속에서 푸근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어보고자 하는 이 시작품은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영영 떠나가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쓴 애틋한 마음이 절절하게 살아 있습니다.

이동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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