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 논리와 변증법적 논리의 한계
입으로는 끊임없이 평화를 외치면서도 삶과 사유과정에서 끝없이 투쟁하거나 분열하고 있으며, 철학과 논리의 끝없는 일대전쟁을 치르고 있다.
현재의 지배적인 논리 가운데 하나인 형식논리학의 논리형태, 즉 삶의 방법론은 "나는 네가 아니고 너는 네가 아니다"라거나 "이것은 저것이 아니고 저것은 이것이 아니다"라는 배제의 논리와 말과 삶에 근거해 있다.
즉 a와 a 아닌 것 사이에 제3이 있을 수 없다. 이러한 논리를 현대 프랑스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미셀 세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이냐 악마냐, 배제냐 포섭이냐 그렇지 않으면 긍정이냐 부정이냐는 양자택일적 선택이나 병합으로서는 우리는 결코 평화의 논리에 도달할 수 없다. 오히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스펙트럼, 쇠사슬, 연속에 있다".
또 다른 지배논리는 "너와 나는 항구적으로 싸우거나 잠정적으로 화해하는데 결국 둘 중 어느 하나가 승리해야 둘은 통일된다"라는 변증법적 논리다. 이러한 변증법에서 말하는 모순은 일정한 사물이나 사태 및 단위 생명체와 물질 단위 사이 또는 그 생활형식 사이의 관계를 창과 방패라는 극렬한 대립의 확대 관계로 보는 극화된 병학적 개념으로 일관되어 있다.
대립은 치명적, 운명적이 아니며 대립하는 것으로 보이는 가시적 모습일 뿐이다. 대립한다고 해서 창과 방패처럼 투쟁하거나 극렬한 상호배제를 하는 것이 아니며, 대립되는 것도 보이지 않는 상생, 기생, 상호부조, 상호보완적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복잡한 생명생성의 내용이다. 크게 보면 이러한 논리는 '죽임'의 논리요, '죽임'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죽임'은 '존재' 즉 '있음'을 목표로 하고 있음에 의해 합법화된다.
과연 그럴까?. 생명은 '있음'이 아니라 '살아 있음'이다. 생명은 죽음과 대립하지 않는다. 생명은 삶과 죽음을 다 포함하는 우주적 순환, 관계, 다양함이다. 세포는 생기는 것만 아니다. 1초에도 수없이 많은 세포가 죽어가면서 동시에 많은 세포가 태어난다. 사람의 몸 역시 마찬가지다. 포지터브 피드백이 있고 네거티브 피드백이 있다. 예를 들면 항문이 크게 넓어져서 똥을 싸고 배설이 끝난 후에 다시 좁아지면 네거티브 피드백의 상태로 돌아간다. 그러나 항문이 한번 열렸다가 닫히지 않으면 죽음이다. 이처럼 생명은 이중적이다. 즉 우리는 살아도 죽음과 같이 있다. 확산, 해체보다 수렴과 집중력이 보다 더 강세이고 중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삶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 또는 1/3쯤은 죽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두개의 차원이 거의 매 순간 동시에 일어나는 과정이 생명의 '살아 있음'이다. 따라서 생명의 논리는 '아니다 ? 그렇다'의 원리로 진행된다.
◇현대 생물학과 컴퓨터의 논리
예수회 신부이며 북경원인 발굴에 참여했던 저명한 고생물학자였던 데이야르 시르댕은 인간의 자의식이 발생한 순간을 고생물학적인 과학의 방법으로 접근할 때 '아니다 ? 그렇다'의 문법으로 접근했다. 즉 자의식을 가진, 반성의식을 가진 존재로서 이른바 슬기인간, 호모 사피엔스가 처음 출현했을 때 그는 직립인간인 호모 일렉투스의 무리들 속에 돌연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나타난 호모 일렉투스의 드러난 외모는 호모 일렉투스, 직립인간의 외모와 전혀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정신 가운데 발생한 반성적 의식, 자기의식, 자의식을 생각하면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호모 일렉투스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과학적으로 이 현상에 접근할 때 모든 직립인간의 외면적 현상, 가시적인 눈에 보이는 현상은 '그렇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만약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중 누군가의 뇌수 속에, 정신작용 중에서 자의식 또는 반성적 의식 즉 정신이 출현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아니다'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생명의 두 현상, 내면과 외면을 동시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 그렇다'의 살아있는 이중논리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데이야르 샤르댕의 기본입장이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보자. 현대 첨단과학의 상징적 존재인 컴퓨터를 움직이는 기본원리는 무엇인가?. "컴퓨터에는 변증법이 없다"며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선언했던 미국의 사회학자 다니엘 벨의 말이다. 컴퓨터를 지배하는 원리는 '아니다 ? 그렇다'의 원리다. 컴퓨터 회로는 '노' '예스'아니면 '예스' '노'로 움직인다. 컴퓨터 회로에서 작동하는 원리는 'and' 즉 그리고, 'or' 또는, 'if then' 만약 그러면과 같은 논리관계어들 뿐이다.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여기에는 이것은 이것이며 이것은 저것이 아니다라는 형식논리의 양자 택일식 배제의 논리는 없다. 오직 그리고(and) 또는(or)이라는 관계의 논법만이 있다. 또 변증법처럼 이것과 저것 사이의 대립투쟁을 통한 제3의 합명제를 전제하는 논리적 관계어는 없다. 만약 그러면 'if then'이라는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숨어있는 차원의 새로운 질서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 컴퓨터에 변증법은 없다. 이러한 논리는 오히려 인간의 관념이 만들어 낸 환영이거나 가설일 뿐이다. 왜 그럴까? 생명은 온 오프, 또는 오프 온으로 이동한다. 디지털적이다. 컴퓨터는 모든 기계 가운데 인간 뇌의 작동원리를 가장 많이 모방한 생명의 원리에 접근해 있기 때문이다. 자동 온도조절기의 구조도 그 기본원리는 최고온도와 최저온도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 순환하는 '아니다 그렇다'의 원리이다. '정신과 자연'의 저자인 미국의 유명한 생물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Gregory Batson)은 자동 온도조절기와 컴퓨터를 예로 들면서 '아니다 그렇다' '그렇다 아니다'의 반복적인 순환원리가 생물진화의 기본원리임을 밝혔다.
◇동학의 생명논리 불연기연
전통적으로 동양의 기학 또는 동학에서 말하는 자기일원론은 정신과 물질을 하나로 통합하며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또는 양의 운동과 음의 운동을 상호보완적인 것이면서도 대조적으로 보는 음양의 대대원리(待對原理)에 기존해 있다. 이 원리 속에는 이미 '그렇다 아니다'의 논법이 있다.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 즉 한번은 음으로 한번은 양으로 생성하는 것을 우주 변화의 기본원리인 도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아니다 ? 그렇다'의 논법은 모든 활동에 있어 생명의 안과 바깥, 또는 인간과 환경 사이의 순환관계 속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생명의 논리가 우리의 사상전통 속에서 나타난 확실한 사례는 없는가? 있다. 현대 서양과학이 등장하기 이전, 이미 백수십년전 1863년 썼던 수운 최제우선생의 논문 '불연기연'이라는 글에서 발견할 수 있다.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불연기연(不然其然), 즉 아니다 그렇다의 논법이다. 불연기연은 동양 최초의 진화론이다. 동양 최초의 진화사상이면서 창조론과 진화론을 결합시키는 이상한 비유방법, 이상한 암시로 가득차 있다. 불연기연의 역설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유기적 관계, 보이는 것 내부에서 보이지 않는 질서의 개입과 견인의 결과로서 이러저러한 대립적이면서 상호보완적인 역설적 관계에 대한 인식의 논리체계다. 현대와 같이 끊임없이 외면적인 복잡화와 동시에 안으로 내면의 영성적 심화가 요청되는 시대에 대응하는 살아있는 안팎의 이중적인 관계를 동시에 파악하는 생명의 논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논리에 기초할 때 그때 우리는 비로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너는 내가 아니고 나는 네가 아니지만 너는 나이고 나는 너이다' 또는 '이것이 저것이 아니고 저것은 이것이 아니지만 이것은 저것이고 저것은 이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너와 나는 서로 달라서 반대되지만 서로 상호보완적이다' 이것과 저것, 나와 너 둘 사이의 관계가 바뀌어 새로운 사태가 나타나는 것은 제3의 변증법적 지양과 통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동안 보이는 너와 나의 관계라는 보이는 차원 밑에 숨어 있던 근본차원인 차원이 마침내 드러난 차원으로 차원변화 했기 때문이다. 외면의 생명도 내면의 영성도 외면과 내면의 관계도 그렇고 그 관계의 차원변화 역시 '아니다 그렇다'이다. 이것이 생명생성의 논법이요, 이에 기초할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평화의 논리, 평화의 길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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