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백화점 건축공사를 하기 전에 주로 토목공사를 했다. 토목공사는 관급공사라서 자금 회전은 잘되었는데 건축공사는 공사금액은 몇 십 배, 몇 백 배 큰 공사라 하더라도 돈을 제때 못받는 경우가 많았다. 동아백화점 건축공사도 그런 경우였다. 공사를 하고서도 받지 못한 공사비 등이 1억6천여만 원이었는데, 회사의 사활이 걸릴 만큼 큰 금액이었다. 공사비를 받지 못하니 자금사정이 좋지 못하였고 비싼 이자를 주고서 사채라도 써야 했다. 어떨 때에는 노임을 못 받은 인부들이 사무실로 와서 소란스럽게 하기도 했다. 기업에 돈이 안 돌아가니 그 곤란함은 이만저만이 아닌 악전고투의 나날이었다. 건설 쪽에는 미쳐 신경 쓸 여력이 없어 지역별 하도급 체제로 일임해 두고 백화점에 전력투구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백화점은 짧은 시간에 자리를 잡게 되는데, 슈퍼마켓의 성장이 큰 힘이 되었다. 당시 슈퍼마켓은 큰 돈이 안된다 싶어 대부분 지하에 있었던 것에 비해 동아백화점은 1층에 슈퍼마켓을 과감히 입점시켰는데 이것이 적중한 것이다. 대구에서는 처음 선보인 형태로 본격적인 슈퍼마켓 시대를 연 것이었고 이후 동아백화점이 발전하는 큰 원동력이 되었다. 다른 매장은 임대를 하였어도 슈퍼마켓은 직영을 하였는데 도매상, 대리점 체제의 당시 유통시장에서 품질좋은 상품을 발굴하여 직구매로 싸게 판매하니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음은 물론 물가안정을 위한 정부정책에도 기여를 한 것이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매장확장, 체인점의 괄목할 만한 성장으로 발전하던 1976년, 또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백화점 2층에서 원인불명의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연락을 받고 현장에 가보니 이미 불은 걷잡을 수 없었고 내부에 접근도 못한 채 바깥에서 물줄기만 뿌려대는 정도였다. 직원들이나 입점주 모두 망연자실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암담한 상황이었으나, 내색도 못하고 오히려 직원들을 위로하며 격려를 해야 했다. 크나큰 재앙 앞에 넋이 나간 직원들에게 "불 난 자리에 집을 지으면 사업이 번성한다. 지금보다도 더 노력하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용기를 잃지 않도록 했다. 곧바로 시민들에게 화재로 인한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조속한 복구계획을 세우고 9월 1일까지 복구를 완료하겠다는 광고를 신문을 통해 냈다. 시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약속을 한 셈이다. 약속대로 재개점을 하기 위해서는 턱 없이 모자란 짧은 기간에 전체직원이 동원되어 3교대로 24시간 꼬박 복구작업을 펴 나가는 고된 시간을 보냈다. 직원 모두가 하나로 똘똘 뭉쳐 화재의 어두운 그림자들을 하나씩 걷어내고 마침내 시민들과 약속한 9월 1일 동아백화점은 새단장한 모습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잊을 만하면 끊임없이 닥치는 시련과 위기는 사업하는 자의 숙명이라는 것도, 또한 구성원이 합심단결하고 진인사(盡人事)하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해낼 수 있다는 것도 아울러 배웠다.
화성산업(주)동아백화점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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