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는 얘기로 문희갑 전 시장이 '후회 막심'이라고 한다. 두 번의 민선 시장 재임이 자기 인생의 최대 실수요, 그 7년은 시간 낭비였다는 것이다. 다른 길을 갔다면 즐거웠을 인생을 허송했다는 한탄이다. 어째서 보람 없는 세월이었을까. 무슨 탓에 실망감이 그리 깊은가. 험한 꼴로 시장을 그만둔 때문일까. 미국의 한 대학에 머물고 있는 그에게 물어볼 길은 없다. 다만 그런 그의 심경을 바람결에 접하는 건 서글픔이다. 대구의 팔자가 왜 이 모양인가 하는 착잡함이다. 가뜩이나 원로가 사라진 고을에 초대 민선 시장마저 스스로 '실종 신고'를 한 셈이니 말이다. 그의 육성을 통해 지방자치의 여명기에 대구가 겪은 시행착오를 수렴하고, 그의 개성 강한 공과(功過)를 축적해 뒷날의 교훈으로 삼을 일 같은 거도 힘들어졌다.
대구는 지금 축적(蓄積) 부재의 시대다. 쌓이는 게 없다. 대를 잇는 전통은 꼽기가 부끄러울 정도다. 인물의 연대표는 텅텅 비어 있다. 사표로 삼을 인물도, 갈 길을 충고하는 어른도 보이지 않는다. 오래된 탄식이다. 세 사람의 대통령이 있었다 하나 모두 허공에 뜬 인물들이다. 지난 가을 문을 연, 광주가 자랑하는 김대중컨벤션센터는 그래서 부럽다.
부자는 많아도 적선(積善)에선 하류다. 수백 억 이상 현찰을 주무르는 부자가 수백 명이란 대구다. 대학의 연구실에, 자라는 2세를 위해, 지역사회를 향해 전 재산을 내놓은 부자의 얘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해서, 부산의 부자 송금조 옹은 기죽게 한다. 송 옹은 평생 번 돈 1천300억 원을 몽땅 부산의 장래에 쓰라며 털었다. 올해 82세인 그는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간다"고 했다.
대구는 소통(疏通) 부재의 도시다. 오고감이 활기차지 않다. 들고남이 막혀 있다. 분지라는 지정학적 이유는 옹색한 소리다. 둘러봐도 세계를 향하는 문이 없다. 소통이 막힌 도시는 필연적으로 늙는다. 노화한 도시는 촌락의 모습이다. 촌락은 자극이 없다. 변화의 속도를 분별하지 못한다. 완고한 독불장군뿐이다. 다양성은 따돌림의 대상이다. 네트워크가 지배하는 세상과 담을 쌓고 있다.
이웃 부산은 오대양 육대주로 활짝 열려 있다. 지난주 끝난 APEC은 대단했다. 21개 나라의 정상과 각료, 세계적 기업인들이 여러 날 부산 바닥을 들었다 놓았다. 부산은 내친김에 2020년 올림픽 유치까지 들먹이며 들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미 지구촌 이벤트의 반열에 섰다. 부산의 국제화가 거침없다. 대구의 존재감은 더 왜소해져 버렸다.
그런 소통 부재의 두려움은 공동화이다. 능력 있는 젊은이들은 서울로 올라가 돌아오지 않는다. KTX는 실어만 갈 뿐 실어오는 게 별로 없다. 다른 도시나 해외로 보따리를 싸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민자가 올해는 8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줄고 있는 것과 정반대다. 대구의 미래는 갑갑하다는 게 이유다.
대구의 격치(格致)는 뒷걸음질이다. 사람과 도시는 몰풍(沒風)스러워졌다. 얼마 전 술집 사건이 단적인 예다. 한밤중 술자리가 대낮에 끌려나와 몰매 맞은 사건은 온 나라에 대구를 야박한 동네로 '낙인' 찍어 놓았다. 굳이 따져 국회의원과 피감 기관의 부적절한 술자리 어쩌구 할 수는 있겠으되 그렇게까지 난리법석을 떨 일인가 하는 손가락질이었다. 말간 맨 정신으로 술자리 언어를 따따부따하는 '드높은 동네'라는 비아냥이었다. 대구가 이렇게까지 삭막해졌나 하는 개탄이 돌았다.
얼마 전 대구를 떠나면서 남긴 어떤 사정 기관장의 한마디는 통증을 안긴다. "대구에 웬 투서가 그렇게 많습니까.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사람들이 서로 뒤에서 찌르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기관장은 불에 덴 심정이라고 했다. 사람을 키우지 않는 풍토란 소리가 겹쳐지는 얘기다. 그러잖아도 대구의 안부를 묻게 하는 흉사가 잦아 바깥 시선이 신경 쓰이는 판인데 말이다.
대구는 지금 산만하고 근시적인 재개발의 소란 속에 이렇게 떠내려가고 있다.
金成奎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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