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점심때 대구시 중구 한 초밥집에 '일생스쿠버' 회원들이 모였다. 정기적인 모임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사전에 약속된 모임도 아니었다. 요즘 인터넷 세대들의 용어로 풀자면 '번개팅'이 이뤄진 것. 그저 '밥이나 먹자'고 전화를 돌렸는데 회원 8명 중 6명이 참석했다. 나머지 회원 2명은 그나마 출장을 간 탓에 오지 못했을 뿐 평소 100% 참석률이라고 했다.
모임이 만들어진 지 얼마나 됐느냐는 질문에 "한 20년 넘었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1980년대 초반 지금의 회원 8명이 뭉치게 됐다는 것. 하지만 굳이 정확한 연도를 기억해내려는 사람은 없었다. 하기야 강산이 두번 변하고도 남았을 시간이 흘렀을 터, 새삼 젊은이들 나이 한두 살 많고 적음을 따지듯이 햇수를 따져서 무엇할까.
평균 연령 63세. 회장인 조정용 씨가 올해 64세이고, 단장 정원덕 씨가 65세, 총무 김건섭 씨와 유순문 씨가 64세이며 그나마 어린(?) 도월환·전종학 씨가 62세, 막내인 김백석 씨가 61세다.
평생을 함께 하자는 뜻에서 만들어진 '일생스쿠버'는 원래 등산 모임에서 출발했다. 회원들 모두 40대 초반의 혈기왕성하던 시절. 물론 40대면 이미 중년에 접어들었다손치더라도 20여 년의 세월이 무심히 흐른 지금에서 본다면 그때는 정말 펄펄 날았던 때였으리라. 당시 거의 매주 부부동반으로 산에 올랐다. 전국의 이름난 산 치고 이들의 발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 일부 회원들은 현재 대구등산학교 임원도 맡고 있어 이미 당시부터 산과는 유별난 사이였음에 틀림없다.
산과의 인연이 이어지던 중 우연히 한 회원이 스킨스쿠버를 접하면서 '일생' 멤버들이 스쿠버에 빠져들었다. 20년 넘게 산소통을 메고 잠수복을 입고 자맥질을 하다보니 이젠 거의 도가 트일 정도가 됐다. 회원들 모두 입수 경험이 500회를 넘어서서 1천 회를 바라보는 케이스도 있다. 가끔 울릉도를 찾을 때면 싱싱한 자연산 '횟감'을 건져올려 식도락을 경험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일생스쿠버 회원들은 그저 자연을 즐기는데 중심을 두고 있다. 함께 바닷속 비경을 즐기고, 또 그것을 사진에 담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는 것. 한겨울도 마다않고 바다에 뛰어들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환갑이 넘은 나이다보니 조금은 조심스럽다. 가끔은 회원들이 돈을 모아 겨울철 동남아로 스킨스쿠버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령 스킨스쿠버 모임이다보니 에피소드도 많다. 몇 해 전 울진에서의 일이다. 스쿠버 장비를 빌려주는 해변가 가게 앞에 짐을 풀고 있었는데, 주인이 본체만체하더라는 것. '노인네'들이 그저 자맥질하는 흉내정도 내려나하고 주인은 생각했던 모양. 주인은 "서울 모대학에 교수로 있는 61세 된 스쿠버 동호회원이 있는데, 만약 당신들이 잠수를 한다면 평생 무료회원으로 모시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인은 금세 그 말을 후회하게 됐다.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회원들도 두 번씩이나 산소통을 메고 잠수를 하는 모습을 보곤 그만 기가 질려버렸던 것. 아무튼 지금은 평생 무료회원으로 대접받는다고.
점심 반주로 곁들인 술이 비워졌다. 한때 '주당'으로 불리웠을 법한 회원들은 지금도 여전히 건강을 자랑하며 아울러 젊은이 못지않은 술 실력을 갖고 있다. 잠수를 끝내고 나와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그 집에 있는 술을 텅텅 비워버려야 직성이 풀릴 정도. 한번은 필리핀 한 섬에서 스쿠버를 마치고 술을 마셨는데, 회원 8명이 이틀 동안 마신 맥주가 무려 365병이었다고 한다. 물론 회원들이 일일이 헤아린 것은 아니고, 술 실력에 놀란 주인이 나중에 계산서를 내밀며 겸연쩍게 말하더라는 것.
하지만 술을 이렇게 마셔도 결코 실수하는 법이 없다. 서로를 최대한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깊숙이 배어 있는 덕분이다. 흔히 말하는 소시적 친구도 아니고, 어느 정도 사회 생활의 때가 묻은 40대에 만나 20년 넘게 가족보다 더 친한 사이가 됐으니 그럴 법한 이유가 있는 게 당연하다. 혹시 술이 지나쳐 회원이 실수라도 할라치면 회장이 점잖게 나무란다. 그러면 아무리 술이 취했더라도 충고를 받아들인다. 서로에게 격식을 차리기 때문이 아니다. 그만큼 인간적인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했지만 다툼 한 번 없었다. 단장을 맡고 있는 정원덕 씨가 행선지를 정하면 그걸로 끝이다. '거기는 이래서 안 되고, 저기는 저래서 안 된다'는 식의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도 없다. 그만큼 행선지를 정할 때 충분히 고려했다고 믿고 따르는 것이다. 때로는 목숨을 걸고 뛰어들어야 하는 바다. 항상 2인1조로 잠수를 하는데, '버디'(buddy)로 불리는 단짝이 바로 생명줄인 셈이다. 20년을 한결같이 지내온 비결을 묻자 회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라고.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사진: 울릉도 성인봉에 오른 '일생스쿠버' 회원들. 회원 8명 모두 60대인 국내 최고령 스킨스쿠버 모임으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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