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6월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건설업체 H건설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전·현직 군장성들을 수사한 사건이 불순한 동기에서 이뤄진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대형 건설사의 약점을 잡아 금품을 뜯어내려던 하청업자와 법조 브로커의 '제보'로 경찰 수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검찰 조사 결과 '마당발'로 소문난 브로커 윤모 씨는 이 수사를 맡았던 남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였고, 업체 회장은 6건의 사건에 연루돼 지명 수배 중이었는데도 제보 당시 경찰에서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아 악취를 풍기고 있는 것이다. 서울 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김경수)는 24일 자신들의 '제보'로 시작된 경찰의 공사수주 비리 수사가 확대되지 않도록 해주겠다고 협박, 건설사에서 9억 원을 뜯어낸 혐의(특경가법상 공갈)로 하청업체 K사 전 대표 이모 씨와 윤씨를 구속했다.
◇ 공권력 '이용' 기업 협박=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경찰청 특수수사과 직원들과 고향 선후배 관계 등으로 얽힌 윤씨와 함께 2003년 5월께 당시 H건설 김모 상무가 공사수주 리베이트 대가로 4억5천만 원을 가로챘다고 제보했다.
경찰은 김 상무를 사기,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이 회사가 국방부에서 수주한 인천공항 외곽경계공사 관련 비리 의혹에 대해 전면적인 수사에 착수, 예비역 소장 1명을 구속하고 현역 장성 2명의 신병을 국방부에 넘겼다.
조사 결과 윤씨 등은 경찰 수사가 파장을 일으키자 H건설을 직접 찾아가 사장 등 임원 10여 명을 만난 뒤 '수사팀 경찰관들을 잘 알고 있으니 수사를 축소시켜 주겠다'며 현금 10억 원을 요구했다.
법정관리 상태였던 H건설은 비리 의혹이 확대되면 공사 수주를 못해 자칫 회사가 문을 닫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판단, 예비역 장성 구속 전후로 네 차례에 걸쳐 모두 9억 원을 건넸다.
그러나 리베이트를 뜯어낸 혐의로 구속된 김 상무는 검찰 조사 결과 혐의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는 등 이들의 제보 내용은 상당 부분 부풀려져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씨를 상대로 무고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 경찰, 석연치 않은 수사=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제보자' 이씨의 1차 진술조서를 경찰청 사무실이 아닌 경찰관 A씨와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였던 윤씨 개인사무실에서 받았다. 경찰은 또 이씨가 여러 사건에 얽혀 6건의 지명수배를 받고 있었는데도 이씨를 조사한 뒤 수배 경찰서로 신병을 넘기지 않고 귀가시켰다.
이씨는 이후 수년 동안 수사 기관의 추적을 피해 도피 생활을 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국방부 전·현직 장성들이 연루된 사건 수사 방식으로는 쉽게 수긍이 되지 않는 대목이다. 검찰은 당시 특수수사과 경찰관들이 윤씨의 청탁에 의해 사건을 수사했는지, 수사 대가로 금품을 받았는지, 지명 수배 중이던 이씨를 체포하지 않은 게 브로커 윤씨 등의 개입에 의해 이뤄졌는지 등을 캐기 위해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 도박자금 83억 용처·로비의혹 수사=검찰은 또 윤씨가 강원랜드에서 사용한 83억 원 상당의 자기앞수표 800여 장을 압수, 자금 출처와 용처를 캐고 있다. 검찰은 법조계에서 '×××호텔 상무'로 통하는 브로커 윤씨가 실제 호텔업으로는 매년 적자를 겪었기 때문에 이 돈이 여러 사건에 개입한 수수료일 것으로 보고 돈 흐름을 추적 중이다.
윤씨 등은 H건설에서 네 차례에 걸쳐 금품을 뜯어내는 과정에서 세 번은 검찰 고위 간부를 지낸 김모 변호사 사무실에서 받았다. 윤씨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출석하라는 검찰 요구를 거부한 뒤 제주도로 골프를 치러 갔다가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김포공항에서 대기 중이던 검찰 수사관들과 추격전 끝에 붙잡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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