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의 부자들 어떻게 생활하나

◇대구 부자들의 소비·문화 생활

렉서스, 아우디, BMW, 크라이슬러, 포드 등 대구지역 수입차 매장들이 수성구에 몰려있는 점만 봐도 이 지역에 구매력 있는 부자들이 많이 산다는 걸 알 수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 10월 현재 대구의 수입차 신규 등록대수는 537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332대)에 비해 무려 62%나 늘었다. 이중 가장 많이 팔린 차가 렉서스(168대). 대구 전체 수입차 신규 등록의 31%를 차지해 벤츠(67대), BMW(46대)를 합친 판매대수보다 많다.

이곳의 주 고객은 40대 초반∼50대 중반의 여성들. 남편이 돈을 벌더라도 아내가 선호하는 차량으로 결정권을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5천700만원대의 차량을 살 수준이 되려면 각종 세금을 제한 연간 순소득이 최소 8천만원 이상은 돼야 한다는 것. 고객의 40%가 자영업자(법인 포함), 30%가 의사·약사, 나머지 30%가 기타 고소득 급여자라고 한다. 이곳에서 1억원대의 차를 구입하는 사람은 연간 순소득이 최하 3억∼5억 이상 되는 사업가·의사 등 최고 부류로 꼽을 수 있다. 외제차도 권위를 중시하는 50, 60대는 벤츠를, 자수성가한 30, 40대는 역동적인 BMW를 선호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보수적인 지역적 특색으로 주위 눈을 많이 의식하는 지도층 인사들은 능력이 돼도 수입차를 못 타고 에쿠스, 체어맨 등 국산 차를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연간 2천만원 이상의 물건을 구입하는 30∼50대 부자들은 당연 백화점들이 정성을 쏟아 붓는 VIP 고객이 될 수밖에 없다. 약 1천명의 상위 고객을 '애플클럽' 회원으로 관리하고, 최상위 100여명을 '프라임 애플클럽' 회원으로 특별 관리하는 대구백화점의 분석에 따르면 애플고객의 36%가 40대로 가장 많다. 다음이 50대(28%), 30대(22%) 순. 사업가, 의사, 교수, 변호사 등 전문직이 대부분으로 남편이 카드 소유자라도 실제 이용하는 사람은 90% 이상이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수성구(51%), 달서구(11%), 남구(10%) 순.

명품을 선호하고 프라이버시를 보호받고 싶어하는 최상위 고객들을 위해 백화점들은 전용 공간에서 쇼핑 도우미가 가져다주는 상품들을 보며 바로 구매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보수적인 지역 분위기를 의식해 소문을 의식한 '거물급' 부자들은 대구보다는 서울이나 외국에 나가 돈을 쓰는 경우도 많다. 한 미술계 인사는 "소문이 날까봐 고가의 그림을 서울까지 가서 사는 부자들이 많다"고 전한다.

골프를 치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늘어나 붐비는 주말을 피해 누구도 예상치 못 하는 평일 낮 시간에 여유 있게 골프를 치는 사람이 진짜 부자라는 말도 있다.

오페라, 음악회 등에 부부가 함께 가며 문화생활을 누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는 것은 이들을 대하는 관계자들의 보편적인 이야기. 집 주변에 산, 공원, 체육시설 등이 잘 돼있어 부부가 새벽이나 저녁에 산책하고 운동하는 모습도 많이 눈에 띈다.

◇대구 부자의 실체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부자들이 돈을 펑펑 쓰고 사치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부지런히 일하고 현실적으로 아껴 쓰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한 은행 지점장은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대구 부자들의 문화 수준이 척박하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적잖았다. 골프장 등에 낡은 차를 타고 가고 명품 옷을 입지 않으면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등 조금만 차이가 나도 함께 어울릴 수 없는 다른 부류로 여겨지는 현실은 왜곡된 부자 문화라는 이야기다.

"대구에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알짜 부자인 '스텔스 웰스(Stealth Wealth·레이더에 보이지 않는 스텔스 전투기처럼 은밀한 부자)'들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일반인들이 상품을 구입할 때 2번 생각한다면 부자는 10번을 고려하지요."

한 전문가는 부자 티를 내지 않는 부자들의 합리성을 높이 사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경제교육을 잘 받아 물건의 가격 대비 가치를 확실히 따져보는 등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 부자들이 좋은 차, 명품을 선호하는 것도 높은 가격만큼 좋은 품질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부자들이 사는 아파트 가격들이 높은 시세를 계속 유지하는 것도 무조건 대형 평수이기 때문이 아니라 주변 환경 등 쾌적하게 살기 좋은 '웰빙(Well-being)' 조건을 두루 갖추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한동철 교수(서울여대 경영경제학부)는 "부자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다"며 "전반적으로 집안의 재물을 물려받은 10% 정도의 상속 부자를 제외한 나머지 90%는 자수성가형·전문직종의 노력파"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부동산 투기, 정경 유착 등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부자가 되는 길이 다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노력하는 사람에게 '부자의 길'은 열려있다고 했다.

(취재 협조=대구에 있는 시중은행, 지방은행, 대구·롯데백화점, 모든부동산컨설팅, 아파트 관계자들, 와이엠모터스, 한국수입자동차협회 등)

글.김영수기자 stella@msnet.co.kr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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