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피카소와 포도주 상표

피카소가 20세기의 거장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은 그의 화가로서의 재능과 노력의 덕이 컸겠지만 그를 뒤에서 밀어준 기업인들의 후원의 힘도 무시할 수 없었다. 피카소가 파리 화단에서 뜨기 시작한 것은 그가 아직 이름을 드날리기 전 무명시절 8명의 기업인들이 '피카소를 위한 후원회'를 만들면서였다고 한다.

그들은 피카소가 전시회를 열 때마다 맘에 들든 안 들든 무조건 그림을 사줬다. 작품이 시원찮아도 가급적 비싼 값으로 사들여 프랑스 화단에서 그의 주가를 높여 나갔다.

화랑가에서 계속 그런 식으로 분위기를 띄우니까 어느새 '피카소 그림은 항상 비싸게 팔린다'는 입소문과 함께 점차 '그의 작품은 다 뛰어난 걸작들이다'는 등식이 세워지면서 보다 짧은 기간에 세계적 거목의 바탕을 굳힐 수 있었다.

문화계 일부에서는 8명의 후원그룹이 아마추어 시절의 무명화가 중 장래성이 있어 보이는 작가를 점찍어 놓고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그림사주기 투자게임을 통해 거목으로 띄운 후 평소 사재기했던 그림들을 비싸게 되파는 그림장사를 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피카소 경우 기업후원이 성공한 케이스다.

돈 많은 귀족이나 기업인들이 화가나 음악가 등 문화예술인들을 지원하는 순수한 메세나 활동은 아름다운 후원문화이며 오늘처럼 경제와 함께 예술문화계가 위축돼 있는 대구지역의 경우 더더욱 기업과 문화예술계의 융합은 절실한 과제다.

한국예총 대구시 연합회 주최로 열렸던 '문화예술과 기업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라는 세미나도 그런 의미에서 매우 유익한 문화예술계의 토론마당이었다. 이번 세미나에서도 지적 됐지만 기업과 경제계는 문화예술인을 경제력으로 지원하고 문화예술 쪽은 문화적 요소로 경제와 생산성에 부가가치를 높여주는 윈윈(Win-Win)의 상생관계로 바뀌어가고 있다.

피카소의 경우만 해도 초기에는 기업인이 그를 경제력으로 밀고 키웠지만 피카소는 그의 재능을 통해 프랑스의 포도주 업계를 세계적 규모로 키워내는 데 기여했다. 8세기 카를(Carl)대제가 프랑스 포도주 육성 정책을 편 이후 연간 730여억 병이 팔리는 프랑스 포도주의 매출성장 비결은 포도주 병에 붙이는 라벨(상표) 디자인에 있었다고 분석한다. 당시 포도주 라벨 도안에 참여해준 작가 들이 바로 피카소와 칸딘스키, 샤갈 등 당대 세계 최고 거장들이었다. 20세기 최고의 화가들이 그린 술병의 상표. 돈 받는 예술인이 거꾸로 기업을 키워낸 케이스의 하나다. 그러한 기업의 메세나와 예술인의 역 메세나의 상호 호혜적 시너지 관계는 최근 세계적인 추세로 확산되고 있다.

삼성그룹도 러시아 볼쇼이극장을 13년째 후원해 오면서 20억 원 이상을 아낌없이 쏟아주었다. 그 결과 러시아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속에 '문화를 사랑할 줄 아는 삼성'의 기업 이미지를 심었고 애니콜 휴대전화의 시장 점유율은 노키아나 모토로라를 누르게 했다.

도요타 자동차 역시 전 세계 52개 자동차 쇼룸에서 콘서트를 열고 청소년 오케스트라 지원은 20년째 해오고 있다.대구에도 메세나 활동을 하는 기업인이 없지 않다. ㄷ은행이나 ㅌ철강, K문화재단, W주택 등에서 티 안 내고 지역 문화예술계를 지원해 왔다.

그리고 문화예술계도 앉아서 받는 수혜자에서 예술을 통한 지역경제 전환에 참여하자는 의욕과 분위기가 일어나고 있다. 더 이상 우리 대구가 모텔 부자'목욕탕 부자는 많은데 문화마인드는 아직도 촌티난다는 부끄러운 비판을 듣지 말자.

오늘날 경제는 포도주병 라벨 디자인 하나에 시장 판도가 뒤집히듯 문화와의 융합이 요구되는 시대다.대구 경제의 부활을 위해 기업인과 문화인의 상생, 그리고 시민과 시민단체 모두의 문화 사랑을 힘차게 펼쳐가 보자.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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