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에서는 생생한 지역경제의 실상을 파악하고 지역기업들의 자금사정을 살펴보기 위해 한 달에 한두 차례 지역 업체들을 방문하고 있다. 얼마 전에 만난 한 유망중소기업의 경영자는 은행 문턱이 너무 높다며 회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얘기해 주었다. 이 업체의 경우 대외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으나 연구개발에 주력하다 보니 제품 개발 전까지는 매출액 대비 순이익이 낮은 형편이었다. 이 때문에 거래은행 지점의 대출승인 요청에도 불구하고 동 본점에서 표면적인 대출 심사기준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명함에 따라 신규대출을 받지 못하였다고 했다.
최근 경기회복세가 점차 진전되고 있지만 내수부진이 상당기간 지속되면서 적지 않은 중소기업들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원인 가운데 하나로 경기순응적인 금융기관의 대출행태를 들 수 있는데 혹자는 이를 가리켜 '햇볕 날 때 우산 주고 비올 때 우산 뺏는다'고 비유하기도 한다. 호경기에는 전반적으로 기업의 경영여건이 호전되기 때문에 금융기관이 부실위험을 과소평가하여 대출을 늘리게 된다. 그러나 경기침체기가 되면 부실대출이 증가하게 되므로 금융기관은 대출요건을 강화하는 동시에 자기자본비율 유지를 위해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부문에 대한 대출을 줄이게 된다. 특히 금융기관과 중소기업 간의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경기침체기에는 정보가 부족한 중소기업의 신용위험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 시기에 중소기업대출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지역내 금융중개기능을 강화하고 지역 중소기업들의 자금조달여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의 '관계대출(relationship banking)' 기능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관계대출이란 금융기관이 거래기업과의 장기적이고 밀접한 거래관계를 통해 축적된 비공개 정보나 소유자의 인격 등 보다 자세한 내부정보에 기초하여 대출을 취급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관계대출이 활성화되면 금융기관과 중소기업 간의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가 완화됨으로써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자금조달이 가능해진다. 또한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금융기관이 경기상황에 따라 대출태도를 바꿀 경우 경기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수 있는데 관계대출은 경기침체기에 기업들이 겪을 수 있는 유동성 위험을 감소시켜 이를 완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지역 중소기업에 대한 관계대출은 지방은행과 상호저축은행 등 지역밀착'중소형 금융기관이 주로 담당하여 왔다. 그러다보니 외환위기 이후 금융 구조조정으로 지역금융기관들이 대거 퇴출되면서 관계대출 기능이 상당부분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제는 관계대출 방식에 있어서도 지역금융기관과 전국금융기관이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이루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지역밀착'중소형 금융기관의 경우 자금 운용여력에 제약이 있는 데다 리스크 부담능력이 크지 않아 현실적으로 관계대출을 늘리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할 때 관계대출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규모의 우위를 바탕으로 충분한 리스크 부담능력을 갖춘 시중은행들이 지역소재 지점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시중은행들이 산업별 리스크의 종합관리 등을 이유로 지역본부보다는 본점에서의 대출심사기능을 강화하면서 지역소재 지점의 중소기업에 대한 관계대출이 위축되고 있는 실정인데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점장의 전결한도를 현행보다 확대하는 한편 대출심사과정에서도 지역본부의 현지 기업정보나 자율적인 결정을 보다 존중해 주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단기적인 성과에 지나치게 집착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지역기업과 동반성장한다는 인식 하에서 우량중소기업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 전한백 기획조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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