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올해도 갈참나무잎 산비알에 우수수 떨어지고

올해도 꽃진 들에 억새풀 가을 겨울 흔들리고

올해도 살얼음 어는 강가 새들은 가고 없는데

구름 사이에 별이 뜨듯 나는 쓸쓸히 살아 있구나

도종환(1954~ ) 초겨울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을 터이지만 그 중에서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생이별의 경우 차라리 세상을 떠나기라도 했다면 이다지도 괴롭진 않았으리라고 말합니다. 사별의 경우 이 세상 그 어딘가에 살아있기라도 한다면 흔적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합니다. 생이별이든 사별이든 이별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겠지요.

이 시를 쓴 시인 도종환이 아내를 잃고 괴로워하던 시절, 시인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시인의 얼굴은 몹시 창백했고, 초점을 잃은 표정은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느 싸락눈 뿌리던 초겨울 오후, 홀아비 시인은 엄마 잃은 두 아기를 데리고 저의 집으로 와서 말없이 앉았다가 돌아간 적이 있습니다. 가로등 불빛 속으로 퍼붓던 눈을 맞으며 한 아이는 등에 업고, 잠이 덜 깬 한 아이는 걸려서 어둠 속 저편으로 쓸쓸히 떠나가던 시인의 기막힌 실루엣을 기억합니다. 이 작품이 들어 있던 시집 '접시꽃 당신'은 당시 한국의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흥건한 눈물의 시간 속에 젖도록 했지요.

이제 또 한 해가 우리 곁을 떠나가려 하고 있습니다. 땅에 떨어져 바람에 굴러다니는 저 나뭇잎들의 서걱이는 소리가 우리를 더욱 비감한 마음에 젖어들게 합니다. 여름내 아름다운 소리로 지저귀던 새들도 떠나가고 이제 들판은 텅 비어 있습니다. 내 가까이 있는 모든 것들을 더욱 따뜻하게 보듬고 사랑해야겠습니다.

이동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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