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인 황혼기에 허리띠 더 조인다

자녀 결혼.유산 대비.사회안전망 미비 때문

한국인들은 50대 이후 인생의 황혼기에 소비를통해 여생을 즐기기보다 오히려 청.장년기에 비해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고 저축하는것으로 나타났다.

LG경제연구원은 1일 '50대 이후 저축률 상승의 배경과 영향' 보고서에서 통계청의 연도.연령별 가계 저축률 통계를 이용해 1969년 당시 가구주의 나이가 25~29세였던 가계의 저축률을 추적한 결과, 이 같은 현상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현재 가구주 연령이 60세를 넘어선 이 가계의 저축율은 25~29세 연령대에서 9.2 %, 30~34세 13%, 35~39세 25.7% 등으로 높아진 뒤 40~44세 21.6%로 떨어졌고 45~49 세에는 18.9%까지 낮아졌다. 이는 30~40대에 결혼과 육아 등으로 소비가 크게 늘어나는 반면 저축 여력은 감소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저축률은 50대를 기점으로 ▲50~54세 28.1% ▲55~59세 22.9% ▲60세 이상 32.9% 등으로 높아져 오히려 20대나 30대의 비율을 앞질렀다.

고령층의 활발한 저축 현상은 이같은 가상(假象) 가계의 연령대별 추이 뿐 아니라 여러 가구를 연령대별로 같은 시점에서 조사한 결과에서도 나타났다. 지난해 통계청의 가구주 연령대별 저축률 통계에 따르면 가구주가 55~59세, 60 세 이상인 가계의 저축률은 각각 29.2%, 32.9%로 25~29세의 26.4%, 30~34세의 28%, 35~39세의 26.0%를 웃돌았다.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이같은 'N'자형 연령별 저축률 곡선은 한 개인이 청.장년기의 저축을 중년 이후 헐어 쓴다는 '생애주기 가설'이나 미국의 '역(逆) U'자형 연령별 저축률 곡선과 크게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상하 연구원은 "일본이나 대만서도 가구주가 중장년기에 접어든 뒤 가계 저축률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지만 우리나라처럼 40대 중후반에 저점을 찍은저축률이 다시 상승하는 형태는 발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이같은 현상이 자녀교육비 지출 일단락, 자녀 결혼비용 부담, 노후불안, 강한 유산상속 의지 등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 가계의 소비지출 중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구주가 40대 중반일 때정점에 이른 뒤 자녀의 대학 졸업 등과 함께 50대 이후 급락하면서 비로소 저축여력이 회복된다는 설명이다.

또 우리나라 신혼 가구의 자산 중 절반 가량이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는 만큼 부모들이 50대 이후에도 자녀들의 혼인을 대비해 저축하고 출가후에는 다시 줄어든 자산을 회복하기 위해 돈을 모으는 것으로 보고서는 분석했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국민연금 재정 불안 등 고령 인구에 대한 우리사회의 안전망이 미비한 점과 '집 하나쯤은 자식에게 남겨줘야한다'는 강한 유산 개념도 고령층저축의 배경으로 지목했다.

윤 연구원은 "고령인구의 저축률이 계속 높아지는 것은 개인 차원에서는 미래불확실성에 대비하는 현명한 선택일 수 있지만 국가 경제 차원에서는 바람직하다고할 수 없다"며 "늘어나는 고령층의 저축률 증가가 곧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구조적인 내수 부진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고령층의 저축률 상승이 추세로 굳어지면 기업들도 고령층을 주대상으로 한 '시니어 마켓' 규모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야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