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탄, 사랑 전하는 매개체 되다

"이젠 동장군, 그놈도 꼼짝 못할끼라."

송모(66·대구 중구 대신동) 할아버지가 사는 여인숙엔 지난달 말 한 달이나 빨리 '산타클로스'가 찾아왔다. 대구쪽방상담소가 연탄 400장을 보낸 것.

할아버지는 상담소 지하 공동작업장에서 종이 쇼핑백을 만드는 일을 한다. 한 달 내내 열심히 일해도 손에 쥐는 돈은 겨우 10만 원 뿐. 하지만 이돈으로 월세 내고 나면 연탄 구할 돈은 항상 말라버렸다.

"추운 데서 웅크리고 자다 따뜻한 방에서 지내게 되니 한결 몸이 가벼워. 옆방에 사는 사람도 연탄이 반갑대. 이제 월세에서 연탄값을 뺄 수 있겠어. 그러면 밥이라도 제때 챙겨 먹을 수 있겠구먼. 고아원에서 자라 사회로 나온 뒤 구두닦이와 음식배달, 막노동 등 안 해본 일이 없지만 남들에게 별로 도움을 받아보지 못했어. 뜻하지 않게 상담소 식구들이 이처럼 챙겨주니 고마울 따름이지."

대구 서구 원대동 백모(49) 씨의 1평짜리 쪽방. 백씨는 쪽방 상담소에서 갖다 준 연탄을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했다. 중국음식점 주방일을 하던 백씨는 음식점이 문 닫자 막일로 생계를 이어오고 있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일거리가 떨어진 뒤 연탄 구할 생각에 잠까지 설쳤다.

"나보다 연세도 많고 더 어려운 분들도 계신데 내게도 도움을 주다니요. 도움을 주신 분들의 정성을 생각해 아껴쓰렵니다." 연탄을 바라보던 백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상담소는 올 가을 쪽방 거주자 190여 가구에 3만여 장의 연탄을 나눠줬다. 올 겨울 한 가구당 300장씩 내년 2월까지 모두 6만여 장을 지원할 계획.

상담소 조재희 총무부장은 "배달인력도 모자라고 연탄을 지원받는 이들도 쌓아둘 곳이 마땅치 않아 한꺼번에 드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상담소의 연탄 나눠주기 운동의 뒤에는 아름다운 이웃들이 있었다. 사단법인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 운동본부', 다음카페'손잡고 가요', SK 네트웍스 등에서 산타클로스를 자처하고 나선 것.

이들 이웃은 성금을 모아 모두 10만여 장의 연탄을 확보, 쪽방 거주자들과 대구시내 7개 복지관이 소개하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할 예정.

대구쪽방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 (사)자원봉사능력개발원 한재흥 원장은"중년층을 중심으로 연탄에 어린 아련한 추억들이 연탄지원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것 같다"며 "불우이웃들의 겨울나기를 돕기 위해 전기장판, 이불 등을 지원받을 곳도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매일신문 '이웃사랑'이 연탄나눔운동을 하는 다음카페 '손잡고 가요'의 활동 모습을 지난달 23일 보도하자 1주일 동안 독자 성금 573만6천910원이 답지했다. 매일신문 '이웃사랑'은 이 돈을 '손잡고 가요' 회원들에게 전달할 예정이어서 늦어도 이달 중순까지는 독자들의 사랑이 '연탄'으로 부화해 어려운 이웃들의 체온을 높여줄 것으로 보인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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