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와 사람-화가 이상순씨

화가 이상순(43)의 경력은 특이하다. 동양화 화가로서 이미 왕성하게 활동하던 1995년 서른셋이라는 나이에 중국 유학을 결심, 이듬해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10년 가까이 공부를 계속 하고 있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전시회는 지난해 난징(南京) 전시회가 처음이었다. "공부가 더 필요했다"라는 것이 이씨의 변명이다.

공부하는 동안 이씨는 당(唐)으로 불교 유학을 떠난 의상, 천축국을 찾아 떠난 혜초처럼 서쪽으로 갔다. 실크로드를 찾아 떠난 그의 발걸음은 둔황(敦煌)에까지 이르렀다. 첫 방문 후 모두 11차례나 찾았다는 그곳에서 이씨는 고려미술의 근원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뭔가 다른, 어떤 특별한 것이 이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를 이씨는 깨달음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둔황의 막고굴에 갔더니 그제껏 공부했던 온갖 미술사조가 한 곳에 다 모여 있더군요". 3세기 이후 수백년간에 걸쳐 아직도 계속 되고 있는 작업이기에 각 시대별 미술양식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이다. 이씨는 "우리가 알고 있는 '입체파' 양식의 작업까지 있었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이미 갖고 있던 것을 왜 서양의 시각으로 봐 왔던가?' 돈오(頓悟)의 충격, 그 대가로 이씨는 6개월 동안 손에 붓을 들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가 열려 있었다.

그날의 깨달음 이후, 둔황을 10차례나 더 방문하면서 이씨의 마음 속에는 '갑자기 새로운 것은 없다'는 믿음이 자리잡았다. 이씨에게 미술은 이제 '민족의 보편성·특수성을 중심으로 다른 요소를 섞어야' 하는 과제로 바뀌었다. "전통을 재테크화해서 현대화해야 한다"는 것이 이씨의 얘기다.

우리의 '주체성'을 바탕으로 해석해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그러면서도 현대성을 동시에 지닌 "된장 맛이 나는 작품"을 그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내것이 부족하다' 싶어도 그에 대한 확신만 가지고 있다면 언제든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이씨는 확신했다. 또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우리 문화의 근원성을 탐구하고 상품화 방법 등에 대해 철저한 준비를 하면서 연구해야 우리 문화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는 길"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김씨는 기교를 부리기보다는 느낌 그대로를 순박하고 투박하게 표현한다. 둔황에서 찾아낸 고려미술의 아름다움을 주로 벽화작업으로 옮기고 있다. 특히 그의 작업은 10차례 이상 옻칠을 되풀이하면서 만들어내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장인정신을 불어넣어 탄생한 벽화는 칠 작업의 반복 때문에 생긴 시차로 인해 고대 벽화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순박하다고 해서 결코 조그만 크기의 작품들이 아니다. 이씨의 작품은 국내에서 전시할 곳을 손에 꼽을 정도로 대형 작품들 뿐이다. '대륙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런 작품들은 중국 현지에서 엄청난 호응을 이끌어냈다. 난징 전시회에서 이씨의 작품을 지켜본 상하이미술관 측은 그에게 초대전을 제안해 왔다. 중국 작가들에게도 쉽게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곳, 특히나 외국 작가들에게 까다롭기로 유명한 곳이어서 의미가 컸다.

길이가 180m에 달하는 공간을 채워야 했기에 부담은 됐지만 새로운 전시회를 위해 1년 동안 20여 점을 새로 낼 정도로 열과 성을 다해 준비했다. 그리고 '歷史的天空(역사의 하늘)'이라는 주제로 지난 10월 관람객을 맞았다.

이씨는 자신이 이제 '활동기'에 접어들었다고 했다. 난징과 상하이에서의 전시회는 그 시작을 알리는 무대였다. 국내에서도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고 중국을 오가며 작품 활동에도 힘을 쏟을 생각이다. 내년 1월에는 주인도 한국대사관 초청 전시회 예정도 잡혀 있다. 1년 6개월간 작업한 높이 40m(기단 10m)에 달하는 대규모 불상작업은 중국에서 마무리 중이다.

이씨에게는 장대한 포부가 있다. '한 도시 전체를 문화도시로 환경개선하는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지긋이 노력한다면 가능하다고 본다"는 이씨는 "평생의 꿈을 위해 공부도 더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사진 : 자신의 작품 앞에 선 화가 이상순 씨.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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