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성서공단의 한 섬유공장에서 일했던 노모(34) 씨는 지난달 30일 날벼락을 맞았다. 정리해고를 당한 것.
16일만 더 일하면 1년을 채우는 노씨였다. 그는 16일 모자라 퇴직금과 연차수당 200만 원도 받지못한 채 '빈 보따리'를 싸게 됐다. "아내, 세 살배기 아들과 한겨울에 길거리로 나앉게 됐다"고 한숨지었다.
올 겨울, 대구·경북지역에 사상 최대 규모의 '해고' 칼바람이 불고 있다. 장기 경기침체로 기업마다 현장인력 감원에 나서면서 정리해고·명예퇴직으로 '보따리를 싸는' 근로자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 이런 가운데 수도권 공장 신·증설규제 완화라는 대악재까지 겹쳤다.
노씨와 같은 공장에서 일했던 송모(37) 씨. 10년 동안 일했다는 그는 "사전예고도 없이 하루 아침에 정리해고 공고를 써 붙인 회사가 너무 원망스럽다"고 했다. 또 다른 동료 김모(46) 씨는 "정리해고당한 근로자들은 3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까지가 대부분"이라며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직장을 다시 구하란 말이냐"고 하소연했다.
노씨가 일하는 공장은 지난 5월과 지난달 2차례에 걸쳐 40명 넘는 노동자를 한꺼번에 정리해고하고 사업장 일부를 임대했다. 회사 측은 "섬유경기가 바닥을 치면서 기계를 돌리면 돌릴수록 손해가 났다"며 "직기 32대를 팔아버렸는데 인력을 무슨 재주로 계속 고용하느냐"고 했다.
대구 성서공단 경우 경기위축으로 사용자들이 '너도나도' 공장을 축소, 공장 일부를 세놓은 뒤 임대사업에 나서면서 해고 근로자가 급증하고 있다. 성서산업단지관리공단 관계자는 "섬유공장을 선두로 대다수 공장들이 공장 일부를 쪼개 임대사업으로 전환하고 있다"며 "결국 공장이 줄면서 유휴인력에 대한 명예퇴직, 권고사직, 정리해고가 잇따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경북지역에서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대단위 감원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대구종합고용안정센터에 따르면 구미공단 내 10여 개 대기업이 올 한해에만 300~700명 단위의 대규모 명예퇴직과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지난 2월 400명이 넘는 명예퇴직에다 78명을 정리해고한 코오롱 구미공장은 추가 감원을 놓고 노사 갈등이 심화되고 법인해산을 의결한 오리온전기의 경우 1천100명이 훨씬 넘는 근로자들과 협력업체 직원들이 '해고' 위험에 처해 있다.
이와 관련, 일자리를 잃은 대구·경북 근로자들에게 주는 실업급여(직전 회사 임금의 절반)는 올해가 역대 최고치다. 올 10월까지 실업급여를 타간 역내 근로자와 지급액은 각각 4만 3천483명, 1천316억 원을 기록, 사상 처음으로 4만 명을 넘었고, 지난해 같은 기간(3만 3천426명, 1천28억 원)에 비해 각각 30%, 28% 늘어났다.
다니던 직장에서 나오면서 고용보험 자격을 상실한 대구·경북 근로자도 올 10월 현재 27만 2천47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4만 1천70명)과 비교해 13%나 불었다.
대구종합고용안정센터 관계자는 "수도권 규제완화로 구미 대기업들의 수도권 이전이 잇따르면 대구·경북 협력업체 벨트가 와해, 이 같은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사진: 정리해고된 대구 달서구 성서공단 내 섬유공장 근로자들이 2일 오전 회사입구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출근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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