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문턱을 넘은 11월의 마지막 날 안동호에 겨울비가 내렸다. 찬바람에 이리저리 뒹굴던 참나무 낙엽이 비에 젖어 땅바닥에 착 달라붙었다. 소나무 숲속 오솔길은 발자욱 소리조차 조용하다. 잔잔한 호수 수면과 어우러져 적막감마저 감돈다.
늘 낚시만 하고 산다는 '낚시 할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안동댐 선착장 인근 매운탕집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었더니 친절하게 금방 가르쳐준다. "저어기, 두번째 전봇대 있지요. 그쯤에서 내다보면 길이 보여요. 그리고 이따가 꼭 들르세요. 매운탕 맛있게 해 드릴게....."
가리킨 쪽으로 가다보니 빼곡한 잡초더미 사이로 길이 보였다. 다람쥐나 다닐 만큼 좁다. 들어서자마자 소나무 숲. 빽빽한 소나무 가지로 하늘이 겨우 보인다. 댐 축조 후 30년. 나무꾼이 사라진 지도 벌써 오래 돼 숲은 원시림을 닮아가고 있었다.
꼬불꼬불 오솔길을 따라 나즈막한 산등성이 두 개를 넘자 곧바로 허름한 오두막 천막집이 나타났다. 안을 들여다 보니 아무도 없다. 두리번거리다가 호숫가로 향했다.
"거 누구요...." 인기척을 듣고 물가 쪽에서 가죽점퍼를 입은 한 아저씨가 냅다 고함을 지른다. "여기 낚시 할아버지가 어디 계신지 아십니까." "거기는 왜 찾아. 내가 그 할애비요." 아니, 올해 예순여덟살 할아버지가 이 아저씨라니!
"어제는 지렁이를 구하러 시내에 나갔지. 날씨가 추워지면서 땅 깊이 들어가버려 지렁이 구하기도 이젠 수월찮네....." 혼잣말을 하듯 움막집에 들어가려다 큼지막한 스티로폼 박스 뚜껑을 열어 보인다. 속엔 청지렁이가 우글거린다.
"안으로 들어오이소." 중학교 2학년때부터 낚시를 시작해 올해로 경력 53년째인 류승하(68) 할아버지. 하회마을이 고향으로 할아버지, 아버지, 숙부가 모두 광복군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다.
오두막안에서 손수 커피를 끓여내왔다. "그땐 지금의 안동중, 경덕중 부근이 하천이랬지. 어개골 쪽에 참한 소(沼)가 있었는데 물고기가 참 많았어. 그 다음엔 암산과 무릉에 나가 낚시를 했지. 허허, 그게 그만 반백년이 넘었네."
왜 낚시를 하느냐고 물었다. "그냥 하는 거요. 고기가 잡히든 안잡히든 낚시를 한다는 게 중요하지. 되면 되는대로 안되면 그런대로 세월을 낚는 거지 뭐. 물만 들여다 봐도 잡념이 없어지고 속이 후련하니깐."
군대생활도 공병으로 파견근무를 하는 통에 경기 포천지역 저수지에서 줄곧 낚시만 할 정도로 한평생 끊임없이 낚시와 인연을 맺어 왔다고 했다. 안동시내 낚시조우회인 '일심회' 회장도 18년이나 맡아 꾼들 사이에는 '유명인사'다.
"웬일인지 모르지만 난 늘 낚시를 하게 되더라고. 결혼 후에도 이틀에 한번꼴은 낚시터를 찾았지. 원래 돈도 없고 벌이도 신통찮은 내가 점포문을 닫아두고 맨날 낚시만 다니니 그만 마누라도 집을 나가 버리더군."
얘기를 멈추고 빙그레 웃는다. 집이야 불이 나든 떠내려가든 나몰라라 했던 게 겸연쩍은 모양. "죄를 받았는지 마흔다섯쯤에 풍이 오더군. 집 옆에 교회 수돗가가 있었는데 거기서 지렁이를 캐다 그대로 꼬꾸라진거야. 동네사람들이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는데 뇌수술하고 3, 4년 동안 고생했어. 하지만 그때도 거동만 되면 이 곳 안동댐으로 찾아 왔지. 집에 있으니 머리가 어지러워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중풍 후유증으로 백내장이 왔지만 그의 낚시벽을 막지 못했다. "눈이 어두워지면서 높낮이 구분을 못해 낚시터로 내려오는 비탈길에서 엎어지고 자빠지고, 숱하게 무릎을 깨기도 했지. 나중에는 아예 양쪽 눈 각막을 모두 수술했어."
깜빡했다는 듯 사진을 꺼내 보인다. 거의 사람 키 크기의 잉어를 둘러맨 사진과 허리 둘레의 두배가 넘는 백연어를 잡았을 때의 기념사진이다. 들여다 보고 있노라니 류 할아버지는 연신 담배를 빨아 물고 잡을 당시 상황을 이야기한다. 흥분한 듯 숨소리도 가빠졌고 목소리도 커졌다. "이놈은 말이야, 거의 3시간만에 잡혔지. 힘도 무지무지하게 세더라고....."
텐트 속은 낚시에 필요한 것을 빼고는 살림살이라고 할만한 게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하루하루를 즐거운 마음으로 산다는 말대로 '무소유의 삶'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셈. 당장 갖고 싶은 것도 낚시 미끼뿐이라고 한다.
혼자 된지 20여년. 새벽 4시면 일어나 낚시터를 둘러보고 오후 내내 낚시채비를 하면서 밤이 오기를 기다린다. 안동시내에 아파트도 있지만 거의 365일 이곳에서 기거하고 팔순 노모만 홀로 산다. 결혼 후 1남2녀를 두기도 했지만 모두 아버지곁을 떠났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떠나왔다. 그래도 환갑은 낚시터에서 보내지 않고 집에서 모친과 함께 했다고. 조선(釣仙)이 되기 위한 길인가? 듣고 있노라니 기가 막힌 이야기뿐이다.
"저 옆 천막엔 예천 사람이 살았지. 금광사업을 하다 쫄딱 망하는 바람에 홧병이 나 이곳에 들어 왔는 데 일년쯤 낚시질에 홧병도 다 고쳤지. 팔십세살 되던 해에 그만 죽었어. 낚시터에서 앉은 채로. 한 18년 동안 같이 지냈는데, 아무리 돈이 많으면 뭘해? 아무 쓸 데가 없어. 어느 누구도 세월엔 장사가 없는 게야."
하얗게 핀 억새풀 무더기가 군데군데 나있는 호수변 소로길을 지나 옆골 낚시꾼 권씨 천막으로 갔다. 권씨가 없다. 아마 시내 다니러 간 모양인 듯. 한 두달 전부터 나오는 사람인데 도무지 말이 없어 그냥 이웃하고 지낸다고 한다.
안동호엔 많은 낚시꾼들이 왔다 간다. 류옹처럼 낚시가 좋아서, 낚시에 미쳐서 온 사람도 있지만 오랫동안 진을 치고 있는 낚시꾼 대부분은 부도나 실직, 이혼 등으로 세상이 싫어져 잠시 세상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다. 지금도 호숫가에는 스무명 이상이 텐트 쳐놓고 기거하고 있다.
"숱한 사연과 내력을 갖고 있지만 낚시터란 곳이 스스로 잡념을 씻어 내는 조용한 곳이지, 남에게 속내를 다 털어놓아 시끌벅적한 일은 좀처럼 없어. 서로의 사연을 구태여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안동호 골짜기마다 낚시꾼 천막이 군데군데 있다. 겨울이 깊어가지만 이들이 드리워둔 낚싯대는 거두워지질 않는다. 모두들 '그냥' 낚시를 해야만 하니까. 스스로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리고 달랜 뒤에야 그들의 세상속으로 다시 돌아간다.
모두들 '조졸'(釣卒), '조사'(釣肆) 수준이지만 세태에 찌든 때를 씻어 내는 데는 나름대로 성공한다. 류옹처럼 영원히 세상안으로 돌아가지 않고 세월을 낚는 사례는 드물디 드물고. 안동·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