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 사색가들/ 다카시나 슈지 지음/ 김영순 옮김/ 학고재 펴냄
본격적인 미술비평이 시작된 것은 20세기 들어서였다. 세기의 전환점인 1900년 베네데토 크로체가 '아카데미아 퐁타니아나 기요'에 발표한 논문에서 미술사 영역에서 "진정한 역사적 해석과 미학적 비평은 일치해야 할 것"이라고 선언한 뒤 부터였다. 이후 역사적·문헌학적 탐구 성과를 기초로 독자적인 감식안에 의한 방대한 미술사를 정리하려는 시도가 계속 생겨났다. 학문으로서의 실증성·객관성을 추구하면서도 작품 자체와 자신의 감수성을 대결시켜 그 의미를 파악하려는 비평 태도가 바로 '예술학'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20세기 초에는 바로 이 '미술사'가 서구 인문학을 이끌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엘리 포르, 앙리 포시용, 에르빈 파노프스키, 케네스 클라크, 곰브리치 등의 '미의 사색가'들이 철학·심리학 등의 인접 학문의 성과를 끌어들여 탁월한 저작들을 쏟아냈다. 1930~1960년 '미술사학의 황금기'에 이루어진 일들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미술사 연구 방법의 대전환이 이루어진 것도 이 시기였다. 19세기 이후 빙켈만과 부르크하르트를 거쳐 뵐플린에 이르러 완성된 '형식주의적 양식 연구'에 맞서 '도상해석학' '지각의 심리학' 등의 다양한 방법론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저작으로 파노프스키의 '도상학 연구', 곰브리치의 '예술과 환영' 등을 들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이 뛰어난 미술사학자이자 비평가로서 이러한 미술사의 발전상과 그 주인공들을 직접 목격한 세대였다. 1950년대 소르본 대학 유학 시절의 은사 앙드레 샤스텔 교수, '판'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파노프스키, 일본 미술에 관심이 지대했던 앙드레 말로까지 그는 교분을 쌓았다.
저자가 직접 20세기 미술론 명저의 저자들과 교분을 통해 생긴 인간적 이해를 바탕으로 쓴 이 책은 외국 이론의 단순 번역이나 소개하는 글 이상이다. 각 저자와 저자, 원전과 원전 사이의 간격을 읽어내 저자의 섬세한 시각으로 풀이해내고 있다.
저자는 이를 위해 외국의 미술론을 단서로 명저를 다루면서 해설과 서평 및 논문의 형식을 조금씩 섞은 독특한 형식을 취했다. 설명을 하자면 책의 원고 자체가 '게이주쓰 신쵸'라는 잡지의 연재물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문 미술사가 쓴 것이든, 비평가가 쓴 것이든 무엇이라도 좋으니 현대 미술사 연구나 미술비평의 존재 방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저서나 논문을 적당히 요리하여 소개하자"는 편집진의 기획의도는 이를 더욱 굳건하게 했던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읽은 독자가 이 책에서 다룬 명저들의 원서를 자신이 직접 읽은 것처럼 착각하는 것은 대단한 오해임을 거듭 경고하고 있다. 집필 의도는 분명히 "미술사 또는 미술비평 업적에 독자들의 흥미를 집중시켜 가능하면 직접 원서를 접해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라는 얘기다. 같은 뜻으로 추가된 '서지안내'를 통해서는 각 사상가들의 다른 저서와 관련 서적들을 찾아 읽도록 했고, 번역자도 책 끝에 '인명해설'을 통해 관련 인물들에 대한 보다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
다양한 미술사 방법론 외에도 18장에서 미켈란젤로가 다녔다는 '조각 학교'가 실은 존재하지 않았으나 후대에 조작된 것임을 밝히는 과정은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도 전해준다.
미학·미술사 및 예술학 등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은 '오리엔테이션 북'으로서 다분히 역할을 할 것 같다. 22명의 '미의 사색가'들의 대표적 저서들이 총망라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번역본 출간에 부쳐'에서 "이 책은 미술 교양서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전문적인 미술서를 원하는 일반 독자에게 안성맞춤이다"라고 썼듯이 단순한 호기심으로 책을 잡은 독자에게 약간 읽기 버거울 수도 있음은 주의해야 할 듯.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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