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언젠가 반드시 밝혀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제 평생의 한이 풀렸습니다."
인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강창덕(78.대구시 북구 동변동) 씨는 ' 국가정보원 과거사건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공식발표가 난 7일 이같이 소감을 밝히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강씨는 "돌아가신 여덟 분의 원혼을 어떻게 달래드려야 좋을지 가슴이 답답하다"면서 누명을 벗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과 30년 세월의 회한을 드러냈다.
강씨는 인혁당 사건으로 치러야 했던 오랜 수형생활과 고문 후유증으로 지금도신경쇠약 등에 시달리며 진통제를 일상적으로 복용하며 살고 있다.
인혁당 사건이 발표된 직후 대대적인 검거령이 내려지자 본능적으로 도피생활을하고 있던 강씨는 1974년 5월 부산에서 체포돼 당시 남대구경찰서(현 남부경찰서)로끌려가 거짓자백을 강요당하면서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수사관들이 원하는 내용을 진술하지 않는다며 물고문까지 수차례 당한 강씨는혹독한 고문을 이기다 못해 수사관들이 미리 작성해놓은 진술조서에 자신도 모르게도장을 찍게 됐고 이것이 나중에 중앙정보부 소속 검사에 의해 기소장으로 그대로변했다.
그는 "조사 과정에서는 '인혁당'이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는데 나중에 공소장을보니 인혁당 재건을 위해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돼 있었다"면서 "재판에서도이는 고문에 의한 거짓 자백이었다면서 수차례 항변했지만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결국은 무기수가 되고 말았다"며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내에게 생계를 맡기고 자신은 특별한 직업 없이 민주화운동에만 매달렸던 강씨는 출소 후 5년여 만에 아내가 교통사고로 숨지는 바람에 생활이 크게 어려워져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근근이 생계를 이어왔다.
강씨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런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되니 이제 더 큰 바람이없다"면서 "그간 진상규명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준 민주세력들에게 무엇보다 큰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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