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매그놀리아'

이 영화는 정신적, 성적 폭력이 초래할 수 있는 심리적 후유증의 심각성을 다루고 있다. 어린시절 여러가지 폭력을 당한 사람들이 불행한 삶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어른과 어린이가 겨루는 퀴즈쇼가 영화의 소재다. 주인공 잭의 아버지는 퀴즈쇼 후원자이고 클라우디아의 아버지는 쇼의 명사회자이며 퀴즈쇼 인기 스타인 소년의 아버지는 소년의 열정적인 매니저다. 20년간이나 방영된 이 프로그램의 명성과는 달리 이들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폭력에 희생된 채 불행한 삶을 산다. 잭은 남성성을 과시하는 선동가로, 클라우디아는 마약중독자로, 천재 소년은 동성애자로 살게 된다.

이들은 아버지로부터 어떤 폭력을 당한 것일까. 잭은 여자를 유혹하고 손아귀에 넣는 방법을 강연하면서 남성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떨친다. 강한 남자가 여자를 지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도하게 남성성을 내세우는 잭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어린시절 병든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 어머니는 이내 세상을 떠나고 혼자 자란 잭은 비정한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에 휩싸여 살았다. 아버지에 대한 의존심의 박탈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갖게 하고 이런 미움은 아버지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단절시켜서 아버지의 도움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의 도전적인 태도와 강한 남성성의 강조는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무력해진 자존심을 보상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의도였다.

클라우디아는 우울증과 마약중독에 시달리는 젊은 여성이다. 어릴 때 아버지에게 당한 성폭력의 상처를 안고 고통스럽게 살고 있다. 퀴즈쇼의 명사회자이자 유명인사인 아버지의 페르조나 뒤에는 딸을 성추행하고 혼외정사를 일삼는 비인간적인 모습이 숨어 있다.

페르조나란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말한다. 왕의 가면을 쓰면 왕이 되고 마녀의 가면을 쓰면 마녀가 되듯이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여러 개의 가면을 썼다가 벗었다가 한다.

마지막으로 퀴즈쇼의 인기 소년 이야기다. 해박한 지식으로 퀴즈쇼에서 연승 가도를 달리는 천재 소년의 뒤에는 아들을 이용하여 돈 벌이를 하려는 아버지가 있다. 아들의 인격이나 기분에 상관없이 잔혹하게 몰아붙이고 퀴즈에서 승리할 것을 강요한다. 어느 날 생방송에서 소년은 소변이 급하다고 아버지에게 요구하지만 묵살당한다. 결국 옷에 실례를 한 소년은 참을 수 없는 모욕감과 수치심으로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린다. 그 후 늘 기가 죽어있고 자기 멸시감에 빠져 살던 소년은 결국 빈털터리 떠돌이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어른이 된다. 어디에도 그가 천재 소년이었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아버지 나이쯤 되었을 때 동성에게서 강한 성적 흥분을 느낀다. 폭군 같은 아버지에게 정신적 고통을 겪으면서 자란 그가 갖는 동성애적인 충동은 아버지에게 고통을 주려는 징벌적인 의미와 자신과 동성인 아버지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종결부에서는 구약 성경의 개구리 재앙을 연상시키는 개구리비가 쏟아진다. 교묘하게 맞물려 스스로는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인간 세상에 자연의 처벌이 도래한 것이다. 도시를 덮어버린 개구리 떼의 소름끼치는 장면은 인간의 페르조나를 벗기고 진솔한 모습으로 살도록 어떤 각성을 독려하는 의미로 뚜렷이 기억된다.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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