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성로의 밤]노점상…환한 백열등 '내일'을 밝힌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오후 5시. 동성로는 감추어진 풍경을 풀어헤친다. 저마다 가로등을 이고 길 가운데로 늘어서기 시작하는 노점상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모두들 행인을 맞기 위해 채비하느라 분주하다. 노점상들의 시끌벅적함은 동성로의 밤을 밝히는 또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동성로에서 활동하는 노점상들은 대략 170개. 특히 대구백화점 본점~엑슨밀라노 사이에 집중되어 있다. 매일 오후 4시만 되면 좌판을 펴는 노점들은 어찌 보면 가장 유행을 많이 타는 곳이기도 하다. 각종 휴대폰 액세사리와 안경, 시계, 간식거리 등 파는 물품들도 각양각색이다.

안경 노점상을 하는 이모(38)씨는 "최근엔 불경기 탓에 먹을거리를 파는 노점상이 많이 늘었다"라고 설명했다. 서민들의 지갑이 얇아져도 소위 먹을거리 장사는 된다는 이야기다. 요즘 매서운 날씨 탓인지 털 목도리나 모자 등의 의류용품이나 찐 옥수수나 오뎅 등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가 유행이다. 양념 오뎅을 파는 노점들이 제법 늘어 행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오후 8시 저마다 붉은 빛을 내는 가로등 아래로 환하게 타오르는 백열등의 행렬이 장관을 이룬다. 노점상마다 물품들의 제 색깔을 내기 위해 백열등을 켠다는데 그 모습이 밤 풍경과 무척 어우러진다.

하지만 노점상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휴대폰 액세사리를 파는 김모(57'여)씨는 "2, 3년 전보다 매출이 50% 줄었다"며 울상이다. 버터옥수수를 파는 김수연(49'여)씨는 "먹을거리를 파는 노점들은 계절마다 다른 것을 팔아야 어느 정도 돈을 쥔다"라고 말했다.

◇ 울산대 핫바 방정숙씨·손성규군(사진 위)

"'울산대 핫바'는 대학생이라면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죠. 원조 지역인 울산대에선 핫바 모르면 간첩 소리를 듣는다니까요."

울산대 핫바를 파는 방정숙(38'여'사진 왼쪽)씨와 그녀의 조카 손성규(19)군은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올 2월부터 대구백화점 앞 분수대에서 터를 잡은 방씨는 "아직 동성로에선 우리들 말고는 울산대 핫바를 파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예전에 군밤 노점상을 하던 이들은 장사가 안되자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장사 아이템을 찾아다녔다고 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울산대 핫바 덕분에 이들은 요즘 신바람이 난다. 주말이나 일요일에는 핫바를 먹으려고 손님들이 줄을 서기도 한다고 했다.

햄, 떡, 치즈, 고추, 야채 등 5가지 종류로 만들어지는 핫바는 종류 만큼이나 즐기는 연령층도 다양하다. "어묵은 90% 정도가 생선살이라 식어도 쫀득쫀득하고요. 1천 원만 하면 즉석에서 만들어진 핫바를 먹으며 허기를 달랠 수도 있죠." 자신들이 만드는 핫바에 대한 이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뽑기 노점상 강영민씨(사진 아래)

요즘 동성로에는 '뽑기' 노점상들이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대구백화점 앞에 노점을 하고 있는 강영민(23'사진)씨도 그 중 한 사람. "누구나 한번쯤 어렸을 때 뽑기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있잖아요. 그런 추억이 그리워서인지 사람들이 지나가다 한번씩 해보죠."

강씨는 주얼리 노점상을 하다 올 8월부터 뽑기 장사에 손을 댔다고 한다. 강씨의 노점상에는 로봇나 붕어, 칼 등 다양한 뽑기가 걸려있다. 강씨는 "평일에는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직장인들이, 주말엔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라고 했다. 특히 나이 지긋한 직장인들은 "옛날에 뽑기를 많이 했는데 지금은 방법을 까먹었다"라며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로또처럼 순전히 운에 달린 뽑기지만 꽝이 걸려도 새끼 붕어 뽑기를 주기 때문에 손님들이 그렇게 손해 보지는 않는다며 권장한다. 뽑기 2차례 하는 데 1천 원.

"처음 장사할 때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죠. 하지만 요즘은 날씨도 추운데다 뽑기가 뻣뻣해져 찾는 사람들이 좀 줄었어요." 그래도 강씨는 장사가 잘 될 때는 하루에 30명 정도는 된다며 스스로 위안을 했다. (12월 8일자 라이프매일 www.lifemaeil.com)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사진.박순국편집위원 tokyo@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