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유럽카페산책

유럽카페산책/이광주 지음/열대림 펴냄

1944년 8월25일, 파리가 독일 점령군으로부터 해방되자 거리는 한순간 환하게 소생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성당이나 개선문 무명용사의 묘를 찾았다. 그 다음 찾은 곳은 카페였다. 피점령하에서 단골들이 기약도 없이 자취를 감추면서 빈집처럼 생기를 잃었던 카페들이 먼저 활짝 되살아났다.

커피와 차문화가 낳은 카페문화는 참으로 유럽적인 모습이다. 카페를 들여다보면 그 거리, 그 도시의 표정이, 그리고 유럽이 엿보인다. 유럽문화를 탐색해온 서양사학자인 저자는 카페를 테마로 유럽문화를 들여다본다.

이 책에서 만나는 카페맨들은 대개 집보다 카페를 더 사랑한 도시의 보헤미안들이다. 괴테, 반 고흐, 나폴레옹, 루소,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카프카…. 모두 카페를 사랑한 예술가와 문인, 사상가들이었다. 그들에게 카페는 마음 편한 사랑방이며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 수 있는 놀이방, 창작의 공방이었다. 수많은 위대한 작품이 이곳에서 영감을 받고 탄생했다.

저자는 이들 지식인들의 면면과 함께 그들이 즐겨 찾던 카페 이야기, 카페에 얽힌 일화들을 소개하며 유럽의 역사와 문화향기의 원류가 되고 있음을 세밀하게 소개하고 있다.

유럽의 카페는 일상으로부터 해방되는 가벼움의 공간이다. 약간은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일탈을 즐길 수 있는 은밀한 퍼포먼스의 장이기도 하다. 계약결혼의 주인공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단골카페는 카페 플로르. 이곳에서 사르트르는 원고를 쓰고 담론을 즐기면서 한편으로는 보부아르의 눈치를 살피며 틈틈이 몇몇 여성들에게 연애편지를 썼다고 한다.

유럽 최초의 문학카페는 파리 소르본대학 라틴구에서 1686년 문을 연 '프로코프'. 이곳은 프랑스 혁명기 당대 혁명가들의 사랑방이자 혁명작전을 모의하던 곳이었다. 파리의 가난한 예술가들의 무대 몽마르트와 몽파르나스에는 일군의 카페들이 모여있다. 그중 카페 되 마고와 플로르는 100년 넘게 라이벌 관계를 이루며 또한 파리 카페 문화의 황금시대를 구가했다.

세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로 불리는 베네치아의 명문 카페 플로리안. 이곳은 괴테, 바이런, 바그너, 모네, 마네, 하이네, 니체, 릴케, 토마스 만 등이 그 먼 순례길마저 마다하지 않던 곳. 그들은 죽는 날까지 카페 플로리안을 사랑하고 예찬했다.

로마의 카페 그레코, 영국식 삶의 양식을 대표하는 런던 커피하우스와 클럽, 빈의 문학카페 첸트랄, 카프카의 산책길 끝의 기항처였던 프라하의 카페들. 하나같이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의 주역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명문카페들이다.

언젠가 파리의 프로코프에 들르게 된다면 이런 문구가 적힌 메뉴판을 받아 볼 것이다. "지금부터 200년도 훨씬 전에 아마도 당신이 앉은자리에서 볼테르, 당통, 벤저민 프랭클린, 나폴레옹 같은 사람들도 식사를 했을 겁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프로코프에 오신 당신을 환영합니다."

노진규기자 jgro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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