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으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제인 에어는 외삼촌댁에 얹혀 살게 된다. 말 없고 자의식이 강한 제인은 외삼촌 가족들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외삼촌이 죽은 후 외숙모의 학대는 더욱 심해진다. 결국 제인은 빈민 기숙 학교로 쫓겨나고, 마침내 숀필드 저택의 가정교사로 들어가 운명의 남자 로체스터와 만나게 된다.
○…샬럿 브론티의 소설 '제인 에어'(1848)는 친척의 학대로 상처받은 고아 소녀가 당당한 숙녀로서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주인공이 외삼촌 가족들로부터 온갖 냉대를 받는 장면에서 독자들은 제인과 함께 마냥 슬퍼하고 분노한다. 삼촌이 제인에게 유산을 남긴 사실조차 감추고 있던 리드 부인이 임종 직전에야 털어놓을 땐 함께 회한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대구의 한 40대 부부가 고아가 된 조카(13'중2)에게 상습 가혹 행위를 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4년 전 교통사고로 부모와 오빠를 잃은 A양을 입양한 이 부부의 짓거리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엽기적이다. 부모의 사고로 9억 원이 넘는 유산의 상속자가 된 A양. 부부는 조카를 입양하는 과정에서 A양의 친척들에게 유산 일부를 나눠주고 자신들도 1억9천만 원을 챙겼다. 나머지 3억5천만 원은 조카 명의의 보험에 가입했지만 친권을 이용하여 곧 해약, 돈을 가로채 버렸다.
○…약 1년2개월간 이어진 악행은 A양의 한 친척이 아동학대예방센터에 신고하면서 밝혀졌다. 밥을 늦게 먹는다며 엎드려뻗쳐 자세로 벌을 세운 뒤 쓰러질 때마다 10대씩 때렸나 하면 신음 소리를 낸다고 입에 행주를 넣고 테이프로 봉했다. 10분 내 밥을 다 먹지 않으면 1초당 1대씩 때리겠다고 위협, 3분이 지나자 둔기로 300대가량이나 때리기도 했으며,구토한 음식물을 핥아먹게도 했다.
○…삼촌의 탈을 쓴 악귀나 다름없다. 입양도 결국 거액의 유산이 탐나서였던 것이다. 천지간에 외톨이가 된 A양은 어린 소녀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6개월 내 새로운 친권자를 찾지 못할 경우 보육원에 가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 됐다. 지난해 이맘땐 대구 불로동에서 부모 있는 4세 아이가 장롱 속에서 굶어 죽은 채 발견돼 세상을 놀라게 하더니 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일어나는 세태가 우리를 한없이 슬프게 만든다.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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