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중3 엄마입니다. 잘 놀아야 공부도 잘 한다고 하지만 아이가 노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간혹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어떻게 생활지도를 해야 할지에 대해 조언 부탁합니다.
답 : J. 호이징가(J. Huizinga)는 그의 저서 '호모 루덴스, Homo Ludens'에서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모든 형태의 문화는 그 기원에서 놀이의 요소가 발견되며, 인간의 공동생활 자체가 놀이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냥은 물론 전쟁조차도 놀이의 성격이 있습니다. 문명은 놀이 속에서 놀이로서 생겨나 놀이를 떠나는 법이 없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놀이를 통하여 그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문화가 놀이의 성격을 벗고 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호이징가가 던지고 있는 질문들을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놀이하는 재미란 도대체 무엇일까? 왜 어린이는 기어다니면서 즐거워하는가? 왜 노름꾼은 자신을 잊도록 도취하는가? 왜 축구시합에 그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가? 호이징가는 놀이에 열광하고 몰두하는 것은 생물학적인 이론으로는 해석할 수가 없고, 놀이에 이렇게 열광하거나 몰두하는 것, 즉 미치게 만드는 힘 속에 놀이의 본질, 원초적인 성질이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자연은 긴장과 쾌락과 재미를 함께 한 놀이를 우리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학교와 가정에서 "놀지 말고 공부하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호이징가의 말에 따르면 놀이란 인간의 특성이며 본능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논다는 것을 결코 죄악시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일과 놀이, 공부와 놀이가 과거처럼 자연스럽게 결합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원시인들은 무엇을 만들 때 처음부터 완제품이 나오기까지의 전 공정에 직접 관여했습니다. 그 과정은 고통의 연속이었고 때로 절망감을 느끼게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제품이 완성되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창조의 희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분업의 가속화는 인간에게서 노동의 기쁨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조립공장의 노동자는 자기가 담당한 부품만 조립하면 됩니다. 그 작업은 지극히 단조롭고 단순합니다. 따라서 완제품이 나와도 자신이 그 모든 것을 만들었다는 자부심과 창조의 기쁨이 없습니다. 이렇게 창조의 주체인 노동자가 공장의 부품처럼 생산 수단인 객체로 전락하게 되는 것을 노동의 소외라고 합니다.
생산 자동화가 심화되고 있는 정보화 사회에서도 상당수의 화이트칼라들이 산업 사회의 노동자와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넥타이를 매고 컴퓨터 단말기 앞에 앉아 있지만 거대한 조직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노동의 종말'을 쓴 제레미 리프킨은 미래 정보화 사회에서는 "첨단 기술세계를 지배하는 소수의 정보 엘리트 집단과 이 세계에서 완전히 불필요하며 아무런 희망도 없는 거대한 영구 실업자 집단이 생긴다"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화해할 수 없는 두 개의 집단이 지구촌에 공존함으로써 인류는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본과 전문지식 없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아웃사이더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절망감과 불안감을 잊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을 일시적 쾌락에 빠지는 것입니다. 경쟁이 심화되고 낙오자가 많이 생길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질 것입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창조의 기쁨과 삶의 의의를 되찾게 해 줄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 일이 시급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평소에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준비하는 자만이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찾아 볼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일까 간혹 생각해 봅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필자는 살아 있는 생명체가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운동선수가 상대를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우리를 열광하게 합니다. 동물이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도 우리를 매료시킵니다. 심지어 범죄 영화에서 범인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써서 애쓰는 모습도 관객으로 하여금 숨을 죽이게 만듭니다. 불교나 가톨릭 수도자에게 있어서 최고의 경지는 극도로 단순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단일한 목표를 향해 일정 기간 극도로 단순해질 수 있는 사람만이 뜻한 바를 이루게 됩니다. 결의에 찬 눈빛으로 무엇을 배우고 깨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젊은이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들인 것입니다. 자녀가 몰두해서 공부하거나 놀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열심히 공부하며 잘 노는 아이만이 길게 오래 갈 수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누구라도 공부하지 않고 일하지 않고 무작정 놀 수만은 없습니다. 어떻게 둘을 조화시킬 것인가가 우리의 과제입니다. 공부할 때는 폭발적인 집중력을 발휘해서 모든 힘을 공부에 쏟아야 하고, 그리고 나서 적절한 휴식과 놀이를 통해 삶의 기쁨과 행복감을 느껴야 합니다. 어느 한 쪽이 지나치면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경쟁사회에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일과 놀이에 대해 절도 있는 구분과 조화의 지혜를 터득해야 할 것입니다. 놀이란 인간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반영한다는 호이징가의 말에 주목하며 어릴 때부터 일과 놀이, 공부와 휴식을 조화시킬 수 있는 나름의 생활패턴을 확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윤일현(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 ihnyoon@hanmail.net)
댓글 많은 뉴스
12년 간 가능했던 언어치료사 시험 불가 대법 판결…사이버대 학생들 어떡하나
[속보] 윤 대통령 "모든 게 제 불찰, 진심 어린 사과"
한동훈 "이재명 혐의 잡스럽지만, 영향 크다…생중계해야"
홍준표 "TK 행정통합 주민투표 요구…방해에 불과"
안동시민들 절박한 외침 "지역이 사라진다! 역사속으로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