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일까?
지난달 28일 오전 10시. 이른 아침부터 밀리오레 옆 만남의 광장이 심상찮다. 수십 명의 여성들이 줄지어 서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줄은 더욱 길어진다. 도대체 무슨 줄일까? 인기가수라도 오는 것일까?
무슨 줄이냐고 물어봤다. "점 보러 왔어요." 이게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인가. 그제야 이들 앞에 늘어서 있는 타로점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16곳. 더 놀라운 건 정오에 문을 연다는 간판이었다. 얼마나 용한 '점쟁이'이길래, 두 시간 전부터 줄을 서게 만들까. 의문의 연속이다.
행렬 속에 있던 대학생 김미정(20)씨가 궁금증을 풀어준다. "여기 타로점집이 용하다고 소문이 나 있거든요. 점 보러 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 2, 3시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에요. 어쩔 수 없이 문 열기 전부터 기다릴 수밖에 없지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연령대에 따라 점을 보는 분야가 갈린다. 대부분을 차지하는 10대와 20대 젊은층에게는 애정운과 시험운, 취업운이 단연 인기다. 30대와 40대는 자녀교육에서부터 금전운, 직장운 등으로 다양하게 묻고, 50대 이상은 사업운으로 관심이 몰린단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재미난 현상도 있다. 한 역술인은 "중년 여성들이 애정운에 대해 묻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대상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친구였다"고 했다.
이곳의 명성은 대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경주에서 온 손지인(18)양은 "경주에도 타로점집이 있는데, 이곳이 더 유명해요. 친구들도 대구 타로점집을 가보고 싶어하지요."
◇그들은 누굴까?
이곳에 5곳의 타로점집이 처음 출연한 것은 지난해 11월. 지난해까지 부산에서 활동했던 한 타로카드 동호회 회원들이 그 주인공이다. 동호회 권도달 회장은 "지난 2000년 이후 서울과 부산에서는 타로카드가 유행했는데 대구는 없다고 해서 진출하게 됐다"고 했다.
전국 단위의 동호회 식구는 모두 40명. 타로카드 경력만 수년째의 마스터들이다. 이들의 나이대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까지. 타로카드가 젊은층에 인기가 있다 보니 젊어도 문제지만 나이가 너무 많아도 세대 차이로 상담이 어려워진단다. 또 점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여성이어서 역술인도 여성이 주류다.
최근 타로카드에 대한 대구시민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이들도 덩달아 바빠졌다. 지난 4월쯤 밀리오레 옆 광장에 5곳이던 점집을 9곳으로 늘렸고, 동아백화점 수성점에도 두 곳을 열었다. 조만간 시내 갤러리존에도 3곳의 점집을 더 열 계획이다.
사진·박순국편집위원 tokyo@imaeil.com
◇ 희망의 마법사 '3번 아줌마'
타로 마스터 권춘화(45.사진)씨. 요즘 지역 청소년들에게 웬만한 탤런트보다 인기있는 아줌마다. 그녀의 점집 앞에 매일같이 늘어선 행렬은 이젠 흔한 풍경이 됐을 정도다. 주로 '3번 아줌마'로 통하는 그녀에겐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일까.
"아마도 다른 마스터들보다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푸근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녀가 인기 있는 진짜 이유는 희망의 마법사이기 때문이다. 울상을 지으며 그녀의 점집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모두 미소를 머금으며 나온다.
"사업에 실패해 가족 동반 자살을 기도하던 남자가 왔던 적이 있어요. 그가 뽑은 카드 7장으로 왜 살아야 하는지 설득하느라 힘들었죠. 하지만 며칠 뒤 살려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러온 그 사람을 봤을 때 정말 기뻤지요. "
알록달록 예쁜 타로카드가 신기해 손대기 시작한 권씨의 타로 인생은 벌써 8년째다. "대구에서 학교를 마치고 부산으로 시집을 갔어요. 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타로카드 책을 발견하고, 삼매경에 빠지게 됐지요."
여기저기 수백 종류의 타로 관련 책을 뒤져보며 독학을 했단다. 그러다 지난 2002년 한 타로카드 동호회를 만나면서 본격적인 타로 인생이 시작됐다.
하루 평균 100명의 사람과 만난다는 그녀의 수입이 꽤 궁금하다. 한 셔플(점을 보기 위해 새로 카드를 섞는 것)당 3천원. 보통 한 사람이 세 번 정도 점을 본다고 하니, 족히 하루에 100만원은 버는 셈이다.
"카드 몇 장으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나요. 점쟁이라기보다 인생상담자라고 보면 되지요." 권씨는 타로점집이 희망을 전하는 인생상담소로 거듭나길 기대하고 있다. "카드를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 손님들이 말하는 3번 아줌마의 인기비결
▲뭐니뭐니 해도 점괘가 잘 맞다.
▲애정운 맑음, 금전운 대박, 취업운 성공…. 그녀의 점괘는 늘 웃음이다.
▲3천원으로 이렇게 내 말을 오래 들어주다니. 상담 시간이 제일 길다.
▲젊은 역술가들보다 연륜에서 더 영험할 것 같다.
▲그녀에게 가면 고민 끝! 엄마보다 선생님보다 더 편하다.
(2005년 8월 3일자 라이프매일 www.lifemaeil.com)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
연휴는 짧고 실망은 길다…5월 2일 임시공휴일 제외 결정
골목상권 살릴 지역 밀착 이커머스 '수익마켓' 출시
[단독] 국민의힘, '한동훈 명의 당원게시판 사태'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