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벽, 녹슨 배관, 떨어진 문짝...'
대구시 달서구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낡고 부서져 수리가 필요한 곳이 한둘이 아니었다. 주민들은 '관리비는 매달 꼬박 내고 있는데도 왜 이런지 모르겠다'며 체념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정부가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영구임대아파트를 대거 건립해놓고 유지·관리에 아예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짓기만 했을 뿐 그냥 방치하고 있습니다." 전국공공영구임대주택연합 노기덕 국장은 "정부가 89년부터 92년까지 전국에 19만 가구의 영구임대주택을 지어놓고 유지 관리 예산은 한푼도 주지 않고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정부가 임대아파트를 위해 내놓은 예산은 지난해 주거환경개선사업비 300억 원이 유일하다. 이 예산은 2003년말 국회에서 예결위원들의 돌발적인(?) 요구로 만들어졌고 경로당, 어린이놀이터 등의 개·보수 비용으로 쓰여졌다. 주민들의 살림살이 개선과는 거리가 있는 사업이었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2004년부터 무주택자를 위한 임대주택 100만호 건설사업이 시작됐기 때문에 예산사정상 유지·관리 비용을 배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경기도, 광주시 등 일부 지자체는 시설 개·보수지원 조례를 제정, 예산을 직접 지원하고 있으나 돈 가뭄에 시달려온 대구시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달서구와 북구가 보안등 전기요금을 지원하는 조례를 제정한 것이 전부다.
가장 큰 문제는 이들 아파트가 건설된지 10년이 넘어서면서 급격하게 노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 아파트와는 달리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이 없고 임대료가 저렴한 탓에 예방적 차원의 수선공사를 하기는 불가능하다. 입주자들의 주인의식 부재도 시설 노후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대구 영구임대아파트 14개 단지 1만8천744가구가 91년부터 95년 사이에 입주한 점을 감안하면 몇년후부터 개·보수 비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임대주택법상 사업자가 장기 수선비용으로 건축비의 1만분의 4를 적립하는 특별수선충당금이 있으나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현재 대구도시개발공사가 관리하는 5개 단지, 8천600가구의 특별수선충당금은 81억 원. 그러나 당장 3개 단지(범물 용지, 지산5단지, 상인비둘기)에 시급한 배관교체 공사만 하더라도 85억 원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대구도개공 주택사업소 관계자는 "싱크대·전열기구 교체, 집안 수리 및 도색 등도 급한 사업이지만 돈이 너무 부족하다"면서 "생활에 꼭 필요한 정도의 개·보수밖에 할 수 없다"고 했다.
대한주택공사는 임대주택 100만호 건설이 마무리되는 2015년쯤에는 전국 임대주택의 개·보수 비용이 무려 24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주택도시연구원 박은규 수석연구원은 "임대료 인상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특별수선충당금은 몇 년 내에 완전 고갈될 것"이라면서 "외국처럼 정부가 예산으로 수선보조금을 지원해야 저소득층의 주거환경 개선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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