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구임대아파트 혹한에 '덜덜덜'

시설 낙후…하루 3,4차례만 보일러 가동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이 '고통스런 겨울'에 몸서리치고 있다.동장군이 기승을 떨치던 지난 14일 오후 6시. 하룻밤을 자며 난방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취재진이 찾아간 대구시 달서구 김모(50) 씨의 12평짜리 영구임대아파트는 꽁꽁 얼어 있었다. 지은 지 15년 된 아파트벽에서 숭숭 불어오는 한기로 머리끝이 아파왔다. 실내의 온도계 눈금은 15℃. 전기장판도 없는 이불 밑에도 온기는 없었다. 점퍼, 털모자를 껴입었지만 발가락 끝에서는 감각이 사라졌다.

새벽 1시쯤에는 12~13℃까지 떨어졌다. '으으' 앓는 소리가 절로 나오면서 잠을 몇 번이나 깼는지 모른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아파트 복도로 나오자 현관문에 붙어있는 '도시가스 중지 예고장'이 눈에 띄었다.

"전기를 끊으면 (체납) 딱지를 찢고 두꺼비집을 올려서 써요. 하지만 수도관은 납으로 찍어버리면 손 쓸 방법이 없어요." 프레스 일을 하다 손가락이 잘린 김씨는 장애등급이 낮아 정부 지원금 한 푼 받지 못해 관리비를 체납하기 일쑤다. 남매가 성인이 되면서 그나마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도 탈락했다.

새벽 3시쯤 억지로 누워 잠을 청했으나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물을 끓여 마시니 몸이 조금 따뜻해졌다. 그렇게 하룻밤을 지내고 나니 얼굴이 퉁퉁 붓고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든 듯했다.

다음날 밤에 찾은 대구시 수성구의 또 다른 15평짜리 영구임대아파트. 이모(44) 씨의 중학생 딸은 전기매트 위에서 이불을 푹 덮어쓴 채 콜록대고 있었다. 낮부터 켜놨다는 전열기는 벌겋게 달아있었다. "가을부터 봄까지 전기장판 없으면 못 살아요. 전기 히터라도 켜놔야 겨우 지낼 만하지요…. " 이씨는 장판에 손을 대더니 불이 들어오는 중이라고 했다. 방바닥은 겨우 차가움을 면한 정도였다. 그는 "세 식구가 가을부터 감기를 달고 산다"면서 "이 동네서 돈 버는 곳은 약국뿐일 것"이라고 헛웃음을 쳤다.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이모(장애2급) 씨는 "허술한 난방시설 때문에 난방비와 전열기 요금이 이중으로 나간다"면서 "집안이 너무 추워 아파트 앞 포장마차에서 밤을 새우는 이웃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보조금 70여 만 원을 받으면서 이틀에 한 번씩 혈액투석을 하는 그는 집안에서도 털모자와 두꺼운 점퍼를 벗지 못하고 있었다.

주민 김모(45) 씨는 "추위에 견디다 못해 배관을 만졌는데 파이프가 썩어 으스러져 너무 놀랐다"면서 "매달 꼬박꼬박 임대료와 관리비를 받아가면서 사람이 살 만한 여건은 전혀 갖춰놓지 않고 있다"고 열을 냈다.

대구지역 영구임대아파트 14개 단지, 1만8천744가구 주민 상당수가 단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자신의 안방에서 '한겨울'을 맞고 있었다. 90년대 초에 지어진 이들 아파트는 시설개선을 하지 못해 등유 연료, 중앙집중식 난방 등 값비싼 난방체계를 그대로 사용하는 데다 낡은 시설로 인해 열효율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 관리업체인 대구도시개발공사와 주택공사는 저소득층 입주자들에게 관리비를 자꾸 올릴 수 없어 하루 3, 4차례 보일러를 가동하고 있을 뿐이다.

(사)아파트생활문화연구소 최병우 사무국장은 "주민 30% 이상이 각종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지방자치단체가 시설개선자금 지원, 기름값 인하 등 적극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획탐사팀=최병고기자 cbg@msnet.co.kr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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