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만 1천여 곳이 넘는 성인오락실이 연일 불야성이다. 호기심에 찾았다 빚까지 얻어 패가망신한다는 '합법적 도박장(?)'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정부가 지난 3월 건전한 게임문화를 유도한다는 취지로 '경품취급기준 고시'를 개정하면서 성인오락실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는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업자들이 법, 단속을 교묘하게 피해가는 탓에 정부안은 '예고된 불발탄'이었다는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도박시장 장악한 성인오락실
지난 26일 찾아간 중구 교동시장의 오락기부품 업소들은 전멸 상태였다. 한때 100여 개 업소가 난립했던 이 곳은 새로 등장한 '일체형 오락기'로 인해 대부분 셔터를 내렸다. 최근 대구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바다이야기' '오션파라다이스' '황금성' '손오공' '한국땅 독도' '그랑블루' 등의 게임기는 일체형 오락기다.
한 업체 관계자는 "기계와 프로그램이 합쳐져 나오는 '일체형 게임기'만 심의를 통과해 우리같은 영세 부품업자는 할 일이 없게 됐다"며 "요즘 뜨고 있는 오락기 개발회사가 프로그램 수정, 업그레이드 등을 직접 맡다보니 업소보다 실제로 그 쪽만 배불리는 꼴이 되고 있다"고 했다.
성인오락실은 대형화, 체인화되는 추세다. 오락기 1대 가격이 500만∼900만 원으로 비싸기 때문에 웬만한 이는 개업할 엄두도 내기 어렵다. 손님들이 번듯한 인테리어에 50대 이상 오락기가 들어선 '기업형 오락실'만 찾고 있기 때문.
최근 오락기 50대로 문을 연 한 업자는 "기계값만 4억 5천만 원, 인테리어 1억, 보증금 2억 원에 상품권 비용 1억 원 등 모두 9억 원 가까이 비용이 들었다"며 "외상없는 현금사업이라 수입이 짭짤하고 짧은 기간에 큰 돈을 만질 수 있어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합법화에는 성공했지만···
문화관광부는 지난 11월까지 모두 10종의 상품권을 지정, 성인오락실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냈지만 각종 불탈법은 계속되고 있다.문광부는 당초 문제가 됐던 고액베팅을 없애 4초당 1베팅(100원), 경품(상품권 등)을 1회 당 2만 원, 1시간 당 9만 원 투입으로 제한했다. 하지만 이를 지키는 성인오락실은 아예 없다. 오락기가 심의를 통과한 후 개발회사들이 게임성을 높이기 위해 일정부분 프로그램을 조작해 주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오락기는 잔 돈은 나오지 않더라도 최고 200만~250만 원까지 '잭팟'을 터트릴 수 있다. 다른 오락기도 최고 30만 원이 가능하고 하루종일 기계를 돌렸을 경우 200만 원까지 딸 수 있다는게 '꾼'들의 얘기였다. 성인오락실 업주들은 하루 1, 2대에서 '대박'을 주고 나머지는 상품권 수수료나 승률 조작으로 이득을 남긴다고 했다.
상품권 유통도 여전히 문제였다. 법규와는 달리 상품권 환전 수수료 10%를 떼고 있는 환전소는 성인오락실이 직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00만 원을 들고 간 손님은 승률 100%를 쳐도 환전하면 90만 원 밖에 쥘 수 없다. '밑져도 본전도 못 건지는' 도박인 것이다. 거기다 정부가 상품권 '1회 사용'만을 허가했지만 한번 쓰여진 상품권을 재유통시키는 수법으로 거액을 챙기는 업자도 있다.
■업자는 '날고' 단속공무원은 '기고'...=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는 '상품권 환전 및 알선'은 환전소와 오락실 간의 유착 관계를 파악하기 힘들고 상품권 재사용은 증거 확보가 어렵다. 단속반원들이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비밀리에 행해지는 '프로그램 조작'은 적발하기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거기다 행정처분도 약하다.
대구시는 올해 1천43곳(청소년오락실 포함)의 게임제공업소 중 매달 300~500여 곳을 점검, 위반업소 419곳을 적발했다. 영업소 폐쇄 및 등록취소된 경우는 불과 4곳, 영업정지 193곳에 과징금은 모두 3천350만 원이었다. 과징금은 대형 성인오락실의 하루 매출액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단속 사례 및 정부 대책=대구지방경찰청은 지난달 21일부터 두달 간 '성인오락실 특별단속'을 벌이고 있다.
대구청은 지금까지 △경품취급고시 위반 52건 △불법 환전 3건 △프로그램 개·변조 44건 △기타 38건으로 모두 137건의 위반사항을 적발, 2명을 구속하고 135명을 불구속, 116개 업소에 대해 행정처분을 내렸다. 경찰청 관계자는 "내부고발 없이는 환전소와 성인오락실 업주의 유착관계를 찾기가 사실상 어렵다"고 토로했다.
28일 대구지방경찰청은 수성구 '00이야기' 오락실 업주와 환전상이 짜고 상품권 교환시 10%씩 수수료를 떼는 수법으로 18억 원 상당을 불법 환전, 1억4천만 원 가량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김모(37)씨 등 업주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한모(38)씨 등 환전상 2명은 불구속했다. 경찰은 "업주와 환전상들이 단속을 피하기 위해 친척·친구 관계로 이뤄졌다"라고 밝혔다.
기획탐사팀=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서상현 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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